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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의 NIE] (55) 아름다운 그날

  • 기사입력 : 2007-02-28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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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1절을 맞으며 -

    나라의 존재와 독립정신 세계에 알린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그날'

    내일이면 전 세계에 조선이 살아있음을 외쳤던 바로 그 함성의 날, 삼일절이네요.
    강화도 조약 이후 스스로 근대화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일본은 조선을 노리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910년 8월 29일 조선을 식민지로 차지하게 되었어요.


    이날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영원한 식민지 국가로 만들기 위해 무단통치를 펼치며, 조선의 영혼을 짓밟았어요. 당시 인구 1천명에 1명꼴로 감옥에 갇혔으니 이는 당시 인구비례로 따졌을 때 세계 최고의 비율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제는 조선의 숨통을 조여 왔고 그 힘겨운 날들을 견디며 우리 민족의 해방 운동은 식을 줄을 몰랐어요.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1910년대는 우리에게는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세계적으로 세상이 요동치는 시대였어요. 1917년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힘없는 노동자 농민들의 세상이 되었고, 1918년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되었어요.


    어느 민족이든 자국의 장래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지요. 약소국도 독립해서 자기 나름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는 희망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1차세계대전 패전국들의 식민지만 해당되고 승리국의 식민지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어요. 결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해당사항이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1918년 2월 8일, 적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그것도 일본에 유학갈 정도의 출세를 보장받은 젊은이들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며 독립만세를 외쳤어요. 나름대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생각하고 있던 민족운동가와 학생들에게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폭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민임을 일제와 세계에 널리 알릴 것을 다짐하고 민족대표 33인을 구성하여 독립선언을 준비하였어요.


    그 무렵 일제가 음식에 독을 넣었다는 소문과 함께 고종 임금이 세상을 떠났어요. 고종의 장례일이 바로 3월 1일이었고, 1919년 3월 1일 낮 12시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와 함께 학생들은 독립선언이 담긴 유인물과 태극기를 뿌리며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때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 근처 태화관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시위의 열기가 지나치게 달아올라 피를 부르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평화적으로 일제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것을 다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비폭력 평화 시위의 원칙을 몸소 지키기 위해 음식점에서 독립선언문을 읽고는 일본 경찰에 자수를 했어요.


    한편 탑골공원에서 시위를 준비하던 많은 학생들은 믿고 따르던 어른들이 맥없이 붙들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비장한 심정으로 시위를 이끌었어요. 노동자, 농민, 학생,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동안 겪은 민족적 설움을 온몸으로 토해 냈어요.
    해외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고. 미국에서도 3·1운동이 일어남으로써 그동안 지도에서 사라졌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와 독립정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로 말미암아 외국인들이 조선의 처지를 다시 돌아보게 하였으며. 해외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투쟁의지를 가다듬게 하고 큰 희망을 안겨 주었어요.

    우리에게 3·1운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 민족에게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그동안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던 독립운동을 상하이 임시정부가 생기면서 효율적인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 뒤에 계속 일어나는 민족해방운동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면서 겉으로만 보이게 하는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계속 억누르던 정책으로 일관해 오던 일제의 정책을 바꾸게 만들었어요.


    더 자랑스러운 것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장서는 그리고 강렬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으로 손꼽힌다는 점이에요.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는 5·4운동이 일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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