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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홍합과 고등어, 그리고 마산예총 -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07-03-16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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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13일 마산의 한 호텔에서는 마산예총(마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약칭이다. 문학. 미술. 음악 등 8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회원은 900여명에 이른다) 임원 이·취임식이 열렸다. 금권선거의 의혹을 받고 있는 새 회장은 취임사에서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저는 홍합과 고등어는 먹지 않습니다”며 말머리를 꺼냈다. 그것들은 젊은 시절 너무나 가난해 아내와 덕동 바닷가에서 홍합을 따 삶아 먹으며 배를 채웠고 값싼 고등어만 질리도록 먹어야 했던 간난신고의 상징적 음식이었기 때문. 그러면서 “문화예술로 시민에게 봉사하고. 내년 완공될 3·15문화회관의 운영에도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벅찬 포부도 밝혔다. 이어서 초등학교 때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삶을 가르친 담임선생님을 연단에 모셔 큰절을 드리는 아름다운 풍경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에 크게 감격했다는 한국예총 부회장은 축사에서 “(현 회장이)당선된 이상 예술인은 일심동체가 되어 화합해야 하며. 분란이 일어나면 서로 좋을 게 없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아주 무식한 일들이 있으므로 회장은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미묘한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그리고 식순의 끝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다!”란 축배 구호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필자는 순간적으로 황당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했던 군홧발 친목계인 ‘하나회’의 단골 구호를 다른 사람도 아닌 문화예술인들의 입에서 듣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부산 초원복집사건에서 세간에 널리 회자된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치적인 말 한 덩어리와 의미 맥락에서 함께 묶이는 이런 구호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해진다는 점에서 아직도 후진적인 퇴행구조에 빠져 있는 예총의 파시즘적인 흔적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통제를 강화시키기 위해 기존에 있던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약칭이다)을 포고령 발동으로 해산시킨 뒤 ‘헤쳐 모여’식으로 다시 만든 예총은 그 탄생에서부터 감정적 획일성의 유전자가 배태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바탕의 역사가 있었으므로 선거 과정의 엄정한 객관적 사실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당선 결과만 가지고서 승복하라는 엄포를 칠 수가 있고. ‘좋은게 좋은 거’라는 세속의 가치기준을 들이댈 수도 있는 것이다. 파워게임에서는 이긴 자의 편이 언제나 옳고. 시끄럽게 지지고 볶는 일은 남 보기에 볼썽사나우니 분란을 가져올 진실은 아예 덮어두면서 속 편안히 ‘우리는 하나다’라는 집단적 일치감의 그늘에 숨어 있자는 획일주의의 사고다. 이런 생각은 개별성을 중시하며 다양함과 창조적 상상력을 지켜야 하는 문화예술인의 가치와는 배치되는 관념인 것이다.

    필자가 서너 번 지켜보았던 마산예총의 회장선거는 여느 선거와 똑같이 주로 자잘한 반목과 갈등으로 매번 소란스러웠다. 이런 자잘한 싸움들은 공동체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제대로 된 인물을 찾으려는 절차의 일부라고 여겨진다. 예총 같은 소규모 직능집단의 선거에는 공동체의 사회적 수준이 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그 수준이 ‘관행’이라는 암묵적 합의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것도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이므로 그 정당성이 엄밀한 의미에서는 굳이 정의거나 불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선거에서 돈을 쓰고. 그 돈으로 회원들이 술을 마신다고 회원 전체가 합의한다면 그 돈을 쓴 후보자는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사회 전체의 통념과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가 될 때는 돈 쓰는 사람과 그 집단이 부정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서 금품 살포의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는다면 관행적 정당성의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금권선거 문제를 제기한 비판적인 몇몇 인물들을 향해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다고.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고. 아니면 집단적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해서 저절로 조용해질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한겹의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지도 않으며.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는 구체적 맥락을 늘 염두에 두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들을 무시하는 논의들은 주로 거짓이 되거나 기만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수록 새 회장은 당당하게 나서서 의혹이 된 사안들의 알리바이를 증명해내는 적극적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새 회장이 ‘홍합과 고등어’에 질려 그것들이 싫어졌다면 언제나 말썽만 일어나는 마산예총 선거 역시도 시민들이 질려서 무관심해지는 것은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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