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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통합논술은 `3불정책'의 사생아

  • 기사입력 : 2007-05-04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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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교과형논술’이란 말을 처음 듣는 이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학문적ㆍ교육적 근거가 없는 말이기에 사전을 찾아도. 인터넷을 검색해도 그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나 교사 등 많은 사람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통합논술이 앞으로 대입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이 말은 본고사 출제의 불가를 전제로. 교육부가 정책으로 제시된 통합교과의 논술문제 출제의 유형이다.

    평가 변별력이 높은 문제로 우수한 신입생을 공정ㆍ정확하게 선발하기 위해서. 주관식 본고사를 시행하려는 주요 대학들과 그것을 불허하는 교육부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본고사와 유사한 논술고사(수험생들이 영어지문을 해석하고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는 종합형 논술고사)를 시행하려는 대학의 의도와 교육부의 본고사 불가 방침 사이에 타협안이 바로 ‘통합교과형논술’이다. 보수적인 교육부의 땜질 정책으로 태어난 비극적 산물이기에. 이 괴이한 유형은 가능하면 빨리 사라져야 올바른 주관식 평가가 정착될 수 있다.

    지식정보화의 시대에 그 우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언어의 경쟁력이다. 생명체의 진화경쟁과 동물의 약육강식 원리가 언어에도 적용된다. 강대국의 언어가 약소국의 언어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 과거 우리 언어가 한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것처럼. 지금 우리 국어가 영어의 강력한 영향권 속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정보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은 모국어의 경쟁력과 비례한다. 한국의 국력 신장을 위해 한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어의 작문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논술교육도 작문교육의 일부이다. 글쓰기 기초 훈련 없이 논술실력의 향상은 불가능하다. 단기간에 논술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사기(詐欺)에 불과하다.

    현재 논술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이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즉 교사가 아닌 강사가. 학교가 아닌 언론기관이 논술을 주도하고 있는 점이다. 이 중대한 모순이 개선되지 않는 한 논술교육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언론기관은 논술 교육의 실태에 관하여 보도하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 스스로 논술교육을 주도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사설학원이나 언론기관이 교육을 주도하면 상업적으로 이용되어 교육의 미래가 없어진다.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을 이용하는 사설기관들이 교육을 맡고 있는 우리 현실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논술 교육의 주도권을 학원이나 언론기관에 빼앗긴 학교와 교육부는 그 무책임을 반성하고. 이제라도 그 개선책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학생들이 신문 기사 위주로 논술 훈련을 하면. 그런 학습은 철학적ㆍ체계적 바탕이 없다. 시류에 민감한 지식이란 쉽게 변하기 마련이기에 체계가 있을 수 없다. 글쓰기를 비롯한 모든 교육의 목표는 창조적 개성의 개발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여 집중적ㆍ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개성은 개발된다. 공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과목과 교사를 선택하고 싶은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 주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는 중요한 이유가 규제일변도의 교육정책과 폐쇄적인 학교 교육 때문이다.

    우리의 논술ㆍ작문교육이 한국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한글은 과학적인 언어이지만 한글 문장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는 문법의식을 지닌 글쓰기 훈련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론 위주에 지나치게 치우친 문법교육과 작문 지도의 영향이 크다. 특히 글쓰기 실기지도가 단어 중심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지도 차원에 그치고 있어. 문장이나 문단 차원으로 그 지도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문법에 맞는 문장으로 논리적인 문단을 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글쓰기 실기지도와 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이 논술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글 문장이 서구어 문장과 같이 논리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여. 서구어 문장과 한글 문장 간에 상호 번역이 잘 될 수 있다. 그것이 한글문화의 영역을 확대하고 한국어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민병기(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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