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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50) 독후감과 논술의 상관관계

  • 기사입력 : 2007-05-09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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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얘기와 만나게 하라


     글샘: 오늘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독후감을 짚어주기로 했지. 중1 때 쓴 글이라며 미리 내게 메일을 보내왔거든. 효정이라고 했던가? 그래, 저기 오는구나.

     효정: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도움말을 해 주시면 좋겠어요.


     글샘: 감상문을 평가한다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아. 어떤 책을 읽고 느끼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말이야. 다만 효정이의 독후감을 읽은 내 느낌은 이야기할 수 있겠지. 그래도 이곳 논술탐험에선 글쓰기라는 큰 틀로 영역을 확장해 한번 짚어보자구나.


     효정: 얀 마텔이 지은 `파이 이야기'를 읽고 썼거든요. 글샘이 보시기에 제 글이 어땠어요?


     글샘: 먼저 효정이가 쓴 글머리를 살펴볼게.
     
     【단락 1】 우리가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잃고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구명보트 그리고 뱅골호랑이,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와 함께 남겨진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그 바다를 지나 살겠다는 의지를 품을 수 있을까? 아니면 희망을 잃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그런 의문을 남겨준 책이었다.

     글샘: `만일 당신이라면 어떻게…'식의 의문으로 시작한 전개 방식이 눈길을 끄는구나. 이 대목은 글의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많은 주제에 대해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해 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구절과 어울려 저울의 천칭처럼 균형 잡힌 구조를 갖추고 있어.


     효정: 독후감을 쓸 때 흔히 책을 읽은 동기로 시작하잖아요. 저는 조금 다르게 써 보려고 고민했어요.


     글샘: 물론 동기가 독특할 경우엔 그걸 내세워도 괜찮아. 독후감에선 정형화된 형식은 없다고 보면 된단다. 이어진 줄거리 요약은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구나. 특별한 단락만 골라 설명해 볼게.
     
     【단락 2】 파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이에나와 뱅골호랑이 앞에서 파이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이고, 리차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죽이는 모습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다. 왠지 끔찍했다.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동물들의 세계는. 생존경쟁을 위해서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잡아먹는 육식동물의 모습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도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을 먹고 있으면서 말이다.
     
     글샘: 중학생의 독후감이기에 더 이상 주문하면 안되겠지. 다만 고교생 수준에선 좀더 매끄러운 표현이 되도록 신경 써야 한단다. 그리고 독서논술을 염두에 둔다면, 이 대목에선 `생존경쟁'이 주제라고 할 수 있지. 그럴 땐 `지금, 우리의 문제'를 섞어 주면 글맛을 한층 더할 수 있단다.


     효정: 예를 들면 어떤 내용이 필요한가요?


     글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쩌면 사람들끼리 먹히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옥이라 불리는 `입시경쟁'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내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친구에게 노트도 빌려 주지도 않는 요즘 교실 풍경은, 소설처럼 허구가 아닌 바로 우리 사회 현실의 이야기다.} 식이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보자.
     
     【단락 3】 파이의 이야기도 놀랍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멋있게 풀어낸 얀 마텔의 상상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샘: 허구인지 실화인지 독자들이 상상하게끔 한 작가의 의도를 몰라준 듯하구나. 뒷부분에 `어떤 것이 진짜인지는 파이를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얘기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이 대목에서는 {어쩌면 이 작품은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는 작가의 다양한 세상 체험에서 우러난 것이리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직업도 다양했다고 하니 그러한 경험이 명작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공부 못지않은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새삼 일깨워 준다.} 식의 내용이 들어가면 금상첨화겠지?


     효정: 거기까진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글샘: 이번엔 앞에서 언급한 마무리 단락을 짚어볼게.
     
     【단락 4】 많은 주제에 대해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고, 사람의 삶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일은 참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일상에 지쳐 있을 때나 힘들 때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글샘: 어떤 글이든 마무리가 어렵단다. 열심히 써 내려오다 보니 혹시 마무리에서 중복된 얘기를 넣은 건 아닌지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 그렇지만 효정인 무난하게 글을 맺었구나.


     효정: 그런데 처음에 얘기한 `저울의 천칭 같은 구조'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글샘: 독후감이든 독서논술이든 책을 읽고 나서 쓸 얘기는 아주 많을 거야. 다만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글쓰는 이의 선택이지. 글쓰기에서 `천칭 구조'란 쉽게 말해 글머리에서 `사람'을 글감이나 논제로 거론했으면 마무리에서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와 환기시켜주는 표현으로 정리하면 글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얘기란다.


     효정: 아하, 그렇군요. 그러면 이 글에서 혹시 좀더 생각을 넓혀 다루었으면 하는 내용이나 주제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글샘: 중학생 독후감 쓰기에서 너무 욕심을 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좋아. 논술 측면에서 희망사항을 몇 가지 조언할게.
     
     ☞ 조언 1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은 절망이 아닐까' 라는 대목과 연관시켜,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살 풍조'를 접목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상에 지쳐있을 때나 힘들 때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며 글을 맺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마무리가 좋다.


     ☞ 조언 2 ⇒ 누구나 아플 때가 있다. 그런 `나의 경험'이 묻어나면 독후감을 읽는 친구들이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다.


     ☞ 조언 3 ⇒ 이 소설의 주인공 `파이'에게 닥친 것처럼, 내가 살아 오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를 글감으로 엮어 보라.


     ☞ 조언 4 ⇒ 행복한 우리 가정에 갑자기 불행이 닥쳐온다면? 내 얘기든, 친구의 얘기든, 부모의 사업 실패에 따른 가정 붕괴, 그리고 청소년기의 방황 등을 `어려움 극복'이라는 틀에서 다룰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자포자기 삶을 살아가는 노숙자에게 희망을 갖고 살아가라는 당부의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효정: 우와, 책 한 권을 읽고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제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네요. 정말 유익한 시간이 됐어요.


     글샘: 오늘은 `생각의 확장'에 관한 조언을 많이 했단다. 독후감은 시험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건 아니야. 그러기에 삶이 물씬 묻어나는 솔직한 느낌 글이 가장 멋진 독후감이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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