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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24) - 섬진강(2)전북 순창군~정읍시

  • 기사입력 : 2007-05-28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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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길따라 흐르는 역사의 흔적



    부지깽이에도 순이 돋는다는 봄은 어디를 가나 온통 초록이다. 산도 그렇고. 들판도 초록이다. 강물도 초록이니. 함께 가는 나그네 마음까지도 초록이다. 힘차게 물줄기를 내리는 낙덕 저수지를 뒤로 하고. 추령천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는 5월의 바람에 초록 싹이 돋아난 갈대도 흔들거리며 춤을 춘다. 강변을 따라 가는 길에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행에 동행한 아내에게 강을 따라 걷고 싶으니. 차를 운전해 오라고 하니. 도리어 한술 더 떠 오히려 걷고 싶으니. 나보고 운전을 하라고 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김병로 생가]
    추령천이 마을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전북 순창군 복흥면 하리 519에 “정의를 위하다가 굶어 죽으면 영광”이라고 했던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이 태어난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가인은 1888년 1월 이곳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담양군 창평에서 공부를 하고. 1909년 21살이 되어서 집을 옮겼다고 한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조기호(72)씨의 말에 의하면 가인이 태어난 생가는 한국전쟁 때 불타 버렸고. 현재의 집은 이후 지어진 것이다. 2007년1월3일 대법원은 가인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과 법관 연수시설을 짓기 위해 우선 5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아직 이정표 하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영광정]
    가인의 생가가 있는 하리 마을을 떠나 강가로 나오면 석보리 마을이 반겨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석보리 마을앞 빨래터에는 빨래를 두드리는 아낙네들의 힘찬 방망이 소리가 들렸다. 복흥면에서 쌍치면으로 넘어가는 추령천을 따라가는 길은 더 이상 자동차 통행이 어려웠다. 자동차를 두고 강을 따라 2km쯤 하류로 내려오면 넓은 반석위에 숨은 듯 서있는 작은 정자 영광정이 반겨준다. 영광정은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에서 둔전마을로 가는 추령천변 기용암 위에 위치하고 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당시 이 지방에 살고 있던 김원중이 동지 13명과 뜻을 모아 배일사상을 고취하고자 영광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이 건물 처마 끝에 태극 8괘를 새겨 망국의 설움을 되새기고 이 건물을 영광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한국전쟁으로 영광정이라 쓴 현판만 남고. 소실되었는데. 1974년 옛날 그 자리에 다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정자를 건립하였다.

    [전봉준 피체지]
    바닥이 훤히 보이는 추령천으로 내려갔다. 강물이 무릎까지 차올라도 차가움보다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구불구불 자연적으로 흐르던 강을 사람들은 제방을 쌓고 길을 만들어 흘러가는 방향을 아름다운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꾸어 놓은 곳이 많았다. 추령천이 가쁜 숨을 고르는 쌍치면 소재지에서 요즈음 한창 인기가 있다는 토종 한우로 막내동생과 점심을 먹고. 강을 따라 길을 재촉하니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피노마을이다. 전봉준은 태인전투에서 패배한 후 몇 명의 부하를 이끌고 태인에서 정읍 입암산성을 거쳐 12월 2일 이곳으로 숨어 들었다가 옛부하인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된 전봉준은 순창으로 이송되어 곧 나주. 전주를 거쳐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장면 중의 하나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산골짜기에 논밭에 생명을 불어넣는 추령천은 역사의 흔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김동수 고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강을 따라 내려오면 정읍시 산내면이다. 느릿느릿 검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강에는 다슬기를 잡는 한가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옥정호의 끝자락이 보이는 산내면 능교리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구절재를 내려서면 정읍시 칠보면이다. 촛대봉 산자락에는 옥정호에서 터널을 뚫어 물을 보내 발전을 하고. 동진강으로 물을 보내는 우리나라 유일의 유역변경식 칠보 수력발전소가 있다.

    발전소 건너편으로 들판을 따라 작은 내를 건너면 몇 그루의 해묵은 나무들 뒤로 커다란 기와집이 보인다. 1755년부터 시작하여 10여 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지는 옛집이다. 지금의 건물 대부분이 그때 지어져 후세에 보수되거나 개조하지 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집 뒤로 낮은 창하산이 있고 앞으로는 동진강으로 흘러드는 내가 있어 풍수지리에서 보면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양지바른 터에 세운 집이다.

    필자의 전공이 건축공학이라 1991년 김동수고가를 답사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종부(宗婦)께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 집은 안동 등 경상도 주택의 집중형과는 다른 호남 상류주택의 대표적인 분산형 배치를 보이고 있다.

    [피향정]
    납작한 읍내집들이 늘어선 태인면 태창리 길 모서리에 호남 제일의 정자로 불리는 피향정이 있다. 이 정자에는 신라시대 태산군수를 지내던 최치원이 와서 연못가를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을 증명하듯이 정자 앞뒤 상연지와 하연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하연지만 남아있다. 정자 앞에는 피향정. 뒤에는 호남제일정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보물 제289호로 지정된 현재의 건물은 조선 현종 때 중건된 후 여러 번 중수를 거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4면이 모두 트여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피향정 주변에 태인5일장이 서고 있어 오랜만에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무성서원. 태산선비문화사료관]
    통일신라 때 태산고을이었던 칠보면 무성리에는 군수를 지낸 고운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무성서원이 있다. 원래 최치원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태산서원이라 불렀는데. 숙종 22년에 무성이라는 사액을 받아 무성서원이 되었다.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비각. 현가루. 강당. 태산사 등이 남아 있다.

    무성서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조선 초기 불우헌 정극인(1401~1481)이 벼슬을 버리고 처가인 이 곳(고현)으로 낙향해 우리나라 최초인 향약을 제정 시행했고.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효시로 “홍진에 뭇친분네 내 생애 엇더한고(세속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고)”로 시작되는 ‘상춘곡’의 발상지가 있다. 태산선비사료관 밖에는 정극인의 동상과 상춘곡을 새긴 시비가 있고. 안성렬(49. ☎ 063-531-1022. 011-289-6292) 관장의 해박한 상춘곡 해설은 단연 다른 칭찬의 말이 필요 없는 으뜸이었다.

    [맛집]
    ▲신설주막
    전북 순창군 쌍치면 쌍계리. [☎ 063-653-7648] 추어탕:6천원. 인근 한우판매점에서 고기를 사오면 1인당 3천원씩 내고 식사를 할ㅠ수 있는 식당이다. 추어탕은 자연산 미꾸라지로 끓여 내는데. 추어탕의 본고장 남원 추어탕보다 맛이 있다. 부부(신준식. 설경옥)가 운영하는데 주막 이름이 부부의 성을 따서 지었다고 해서 해학적이다.
    ▲용두머리식당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29-1. [☎ 063-537-5055] 좁은 면소재지 마을에 50여개의 한우식육점이 밀집해 있는 한우마을에 있다. 한우. 한우육회 전문점으로 양질의 한우를 맛볼 수 있다. 최고급 등심 600g: 1만4천원. 식사를 하며 구워먹는 비용은 6천원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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