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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1907년생, 월하(月下)와 소암(素菴) / 우무석(시인·도서출판 불휘 대표)

  • 기사입력 : 2007-06-15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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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하는 김달진(金達鎭 1907~1989) 시인의 아호이며. 소암은 현중화(玄中和 1907~1997) 서도가의 호이다. 이들은 올해로 딱 생탄(生誕) 100주년을 맞는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7일까지 ‘소암 현중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특별전 : 서귀소옹(西歸素翁)의 삶과 예술 - 먹고 잠자고 쓰고’가 개최되고 있으며. 지난 5일에는 ‘월하 김달진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이 고려대학교에서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 주최로 열렸다.

    한 생애를 오직 예술로 하나되게 실천함으로써 높은 정신성과 독자성을 담아낸 이들의 탄생을 기념하고 그 예술사상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월하는 진해시 소사동에서 태어났다. ‘시인부락’의 시인이고 승려. 한학자였으며. 지역의 교사였다. 평생을 세간에서 멀리 떨어져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고고한 정신의 세계를 천착하였다. 그는 영원의 세계. 절대적인 세계를 향한 동경으로 구도자다운 삶을 살면서 한서와 불경의 번역에도 경탄할 만한 업적을 낳았다.

    월하의 문학적 업적과 성취도는 진해 김달진문학관을 중심으로 진정한 정신의 사유와 자기성숙의 가치를 따져 물으면서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그의 시사적 의의는 “무위자연 사상이 불교의 사상의 터전 위에서 노장적인 동양철학의 진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은 단절되었던 현대시의 정신사적 흐름을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또한 현대적 의의를 갖는다”고 최동호 교수는 단언했다. 우리 문학에서 월하의 문학은 그의 선배였던 만해 한용운과 동국대학 후배였던 조지훈과 서정주에게로 이어지는 불교시의 정신사적 흐름을 연결시키는 뚜렷한 이음매인 것이다.

    소암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하였으며 특이한 골법용필(骨法用筆)로 개결(介潔)하고 고담한 서품을 남긴 한국서단의 거장이다. 유년기에 가학을 통해 한학과 불경을 익혔으며. 18세에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글씨로 일본을 이겨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글씨로 독립운동을 하고자’ 서예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일본 당대의 서예가인 마츠모토 호우수이와 츠지모토 시유우 문하에서 사사하였다.

    귀국 후 소암은 강건한 획질(劃質)의 육조해(六朝楷) 필법으로 왕희지 계통의 전아한 행초서(行草書)를 재해석하거나 한글예서와 한글행초서를 실험하면서 ‘한국서예의 이채(異彩)’로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열었다. 그의 글씨는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이 뿌리째 뽑은 듯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澹泊斬草除限). 이를 일러 서단에서는 ‘소암체’라 따로 부르고 있다.

    월하와 소암. 이 두 사람이 살아 생전 서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다른 예술영역에 천착하면서 드러낸 공통점이 있다. 한학과 불경의 조예뿐만 아니라. 언어와 글씨를 매개물로 하는 현상적 움직임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통찰케 하고 그 온전한 모습 속에 존재자로서 자신을 참여시켜 하나가 되게 한 점에서 그 공통점이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장자의 말대로 “천지는 나와 함께 오래 살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하나가 되었으니 거기 또 무슨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만물일여(萬物一如)와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사상이 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지배했던 20세기를 몸소 체험하면서도 예술과 삶을 일치시키는 꼿꼿한 정신성으로 주체적 자기확립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이들은 탈속한 경지를 보여줬다. 그 정신성의 경지가 바로 자유(自遊)의 체험이다.

    이 자유의 자리에서 월하와 소암은 사후에 그 정신들로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진해 김달진문학관에는 소암의 수제자인 다천(茶泉) 김종원(金鍾源)이 쓴 월하의 시 ‘경건한 정열’이라는 뛰어난 서품이 있다. 월하의 시가 이른 정점이 ‘경건한 정열’이었다면 소암의 고법창신(古法創新)의 세계를 그대로 잇는 다천이 자유자재의 필법을 구사하여 소암과 월하의 정신을 만나게 한 그 서품은 참으로 가치 있는 작품인 셈이다. 물화된 인간성. 혼탁한 사회에서 정신사의 물길이 막혀있을 때. 월하와 소암이 성취한 지혜와 학문 그리고 예술의 정신주의적 세계는 인간성을 새롭게 회복시키는 거울이 되는 것이리라. 우무석(시인·도서출판 불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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