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2003학년도 정시 논제

※ 다음 중 제시문 [가]는 인류의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하나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다.
I.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에 담긴 내용을 제시문 [가]에 나타난 이념의 실현과 관련지어 분석·평가하고. Ⅱ. 이를 기초로 하여 제시문 [라]와 제시문 [마]가 기술하고 있는 사태에 관한 자신의 (긍정적. 부정적. 비판적. 혹은 절충적) 견해를 논술하라. 단. Ⅰ과 Ⅱ에 대한 논술 분량이 비슷하게 되도록 하라.

# 출제 의도

이 논제를 출제한 성균관대에 따르면 출제 의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세계화’의 흐름을 올바로 인식하고 보편적인 인류문화의 창달이라는 역사적 이념과 연관시켜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독자적 사유의 깊이를 평가하고자 했다. 즉. 세계화의 진행방향과 그 실제를 파악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인류 보편적인 문화 발달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수용해야 할지에 관한 사고의 깊이를 평가하려 했다.

둘째는 이념 제시. 의견 개진. 사실 기술 같은 다양한 내용의 글을 독해해 체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묻는다. 또 이 재구성한 자료를 활용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논증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평가하고자 했다.

[사진설명]  이달초 서울의 한 입시학원 주최로 열린 '2008 대입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몰려 논술출제 경향과 내신 반영률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제시문 분석

제시문 분석에 앞서 논제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논제의 요구사항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제시문 [가]에 나타난 이념의 실현과 관련해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에 담긴 내용을 분석·평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제시문 [라]와 제시문 [마]가 기술하는 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답안의 분량이 비슷해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이 논제가 제시문에 대한 매우 정확한 쟁점파악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제시문 각각의 쟁점을 파악해야 그와 관련된 다른 글과의 관계를 분석·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논제를 풀어 가는 핵심 열쇠인 제시문 [가]는 더욱 정확한 독해가 필요하다. 제시문 [가]는 제시문 [나]~[다]를 독해한 후에야 무엇을 중심으로 독해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제시문 [나]는 세계화의 진행이 세계적 조류이며. 그것이 경쟁과 협력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식과 제도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어느 정도 당위적인 진술이다. 제시문 [다]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가 파괴된다는 지적이다. 그 배경이나 원인이 뚜렷하게 제시돼 있지는 않지만. IMF나 OECD. WTO 같은 국제기구의 행동에는 문화적 고려가 결여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추론의 근거를 마련한다.

따라서 첫 번째 요구사항인 ‘제시문 [가]에 나타난 이념의 실현과 관련해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에 담긴 내용을 분석·평가하는 것’은 ‘세계화의 흐름과 부작용’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시문 [가]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세 가지 정도이다.
1) 제2명제 : 인간의 자연적 소질은 ‘인류공동체’ 속에서만 계발될 수 있다.
2) 제5명제 : 보편적 정의가 지배하는 시민사회. 즉 완전히 정당한 시민적 정치체제의 건설이 인류를 위한 최고 과제이다.
3) 제7명제 : 정당한 시민적 정치체제의 건설에 있어 중요한 것은 형평. 즉 평등의 법칙에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세계시민적 상태에 도달하는 요체가 된다.

위의 세 가지 명제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기 위해 어떠한 조건들이 요구되는지 알 수 있는 문제해결의 실마리이다.

두 번째 요구사항과 관련된 제시문 [라]와 [마]는 글이 의도하는 의미를 파악하기 쉽다. 제시문 [라]는 사형제도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입장과 한국 헌법재판소의 상이한 견해가 제시돼 있다. 제시문 [마]는 조기 영어교육이 이뤄지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제시된다. 따라서 두 번째 요구사항은 ‘사형제도와 조기영어교육 풍조’에 대한 것이다.

# 논술문 작성방향

다시 한 번 문제Ⅰ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제시문 [가] : 칸트는 이성의 사용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소질이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류공동체 속에서만 완전히 계발될 수 있다고 했다.
제시문 [나] : 실제 현재 사회의 세계화 진행은 급속도로 이뤄진다.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제시문 [다] : 그러나 세계화는 그 방식의 무지함으로 인해 생물학적 문화다양성과 주체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제시문 [나] :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무한경쟁시대는 우리에게 통상마찰이나 무역자유화와 같은 다양한 문제를 안겨 줬다. 이를 효과적이고 현명하게 넘어설 수 있는 국민의식과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제시문 [가]에서 유추 : 이를 위해 국가상호 간에 대립을 넘어 형평성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시민적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이러한 세계시민적 상태를 위해서는 정당한 시민적 정치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며 보편적인 정의가 지배하는 시민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 논제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는 형식논리의 차원에서 해결책을 추론하고 넘어가기 쉽다는 점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는 형식적이지 않다. 따라서 그 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더 중요하다. 보편적 가치라고 칭해지는 것에는 무엇이 채워질 수 있는지 글에서 밝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시문 [가]를 근거로 보편성의 원리가 왜 지향해야 할 가치인지. 그 내용은 어떻게 정의돼야 하는지에 관해 먼저 전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전제 속에서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논의가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문제 Ⅱ에서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는 외부 단체(국제앰네스티)의 입장에 대한 반대(한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옹호)와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반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만약 같은 논점에 대한 일관된 찬성으로 글이 구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형식적인 측면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형제에 대한 판단과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판단은 논리적으로 엇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경남초암아카데미 제공>

<성균관대 2003학년도 정시 논제 제시문 원문>

[가]
세계무대에서 전개되는 인류의 역사를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이해한다.
제1명제 : 생명체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게. 그리고 목적에 맞게 발현되도록 결정되어 있다.
제2명제 : 지상에서의 유일한 이성적 생명체인 인간에 있어서 그의 이성의 사용을 지향하는 그러한 자연적 소질은 개인에서가 아니라 유(類: 인류공동체라는 뜻) 속에서만 완전히 계발될 수 있다.
제3명제 : 자연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그의 동물적 존재의 기계적인 명령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며. 또 인간 자신이 본능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서 창조한 행복과 완전함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4명제 : …생략…
제5명제 : 자연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해결을 강요하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보편적으로 정의가 지배하는 시민사회의 건설이다. … 개인의 자유가 외적인 법률의 강한 힘과 결합된 사회. 즉 완전히 정당한 시민적 정치체제가 인류를 위한 자연의 최고 과제임에 틀림없다.
제6명제 : …생략…
제7명제 : 정당한 시민적 정치체계를 확립하는 문제는 정당한 국제관계를 확립하는 문제에 의존하며. 이 후자의 해결 없이는 전자도 해결될 수 없다. … (국가 간의 전쟁)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악함은 인류로 하여금 많은 국가들 상호간에 대립을 넘어서서 형평의 법칙을 발견하게 하고 또 이 형평의 법칙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통합된 힘의 원천인 세계시민적 상태에 도달하도록 하여.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게 한다.
제8명제: 인류의 역사는 국내적으로도 완전하며. 그리고 이 목적에 맞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완전한 국가체제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연의 숨겨진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제9명제 : …생략…
- 칸트.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 의미를 살리고 부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출제자가 원문을 다소 손질함.

[나]
오늘날 세계는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무역이 늘어나며. 핵. 환경 등의 국제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구공동체라는 차원에서 필요한 물자를 교류하고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른 국가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세계의 일원으로 참여해 나가야 한다. …중략…
1990년대 이후 국제환경은 크게 변동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냉전관계가 종식되고. 경제적으로는 국가 간의 경쟁과 통상마찰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시작되면서. 각국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무한경쟁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체제는 공산품과 농산물 및 서비스 교역에까지 무역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외국의 산업과 국내산업이 공정한 바탕 위에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의 보호와 지원도 제한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경제적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외국인의 국내 경제활동이 허용되며.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세계경제사회가 전개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제경쟁과 더불어 상호협력을 잘 해 나갈 수 있도록 국민들의 의식과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공통사회(상) : 일반사회》

[다]
이 시대의 세계화는 때때로 문화적인 파괴를 통하여 주체성의 보장을 해쳐 왔다. 다양한 문화들은 텔레비전. 세계여행. 국제어인 영어. 보편적인 인권개념. 소비자 보호주의. 지역의 전통에 모순되는 초지역적인 간섭 등의 침범에 의해 굴복했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사라와크(보르네오 서북부의 말레이시아 연방의 한 州)의 다야크족(보르네오섬 내륙부에 분포하는 비이슬람교 종족)의 ‘긴 노래’를 짧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이 시대의. 오랜 전통문화양식은 무선의 도입 이후 20년도 되지 않아 완전히 말살되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단체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그리고/또는 세계적인 토목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댐. 도로 그리고 사회기반시설(도로. 항만. 철도. 통신. 발전 등) 사업들은 많은 고유한 생활양식을 심하게 붕괴시켰다. 정말. IMF(국제 통화기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WTO(세계무역기구). 그리고 세계은행 같은 국제경제기구들은 문화적으로는 문외한 경향이 있었다. 즉 그것은 생활세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데 기여한 접근 방식에 있다. 이 점에서 일부 관찰자들은 세계화가 생물학적인 다양성과 함께 문화적인 다양성을 분쇄시킬 수 있다고 염려해 왔다. 현재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절반은 이미 소멸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일부 언어학자들은 90% 이상의 언어들이 다음 세기 동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 J. A. Scholte. 《Globalization: a critical introduction》

[라]
A. 스톡홀름 선언(Declaration of Stockholm) : 사형제도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입장
- 국제연합은 사형제도가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명확히 천명하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중동. 북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온 200여 명의 대표자 및 참가자로 구성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국제앰네스티 스톡홀름 회의는 다음을 상기한다:
- 사형제도는 극도로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며 모욕적인 형벌임과 동시에 생명권을 침해하는 제도이다. …
그리고. 다음을 선언한다:
- 사형제도를 절대적으로 또한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 정부에 의한. 또는 정부가 허용하는 어떤 형태의 사형제도도 규탄한다.
- 사형제도의 총체적인 폐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의한다.
더불어. 다음을 촉구한다:
- 국가별 및 국제적 민간단체들은 사형제도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홍보물을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노력하자.
- 세계의 모든 정부는 사형제도를 지체 없이 폐지하라.

B.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1996년 11월 28일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사형이 우리나라 헌법 질서에 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996. 11. 28. 95 헌바1
첫째. 사형이 공공의 이익 등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헌법규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둘째.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

[마]
유치원생의 특기교육 사교육비는 월 평균 12만 6천 원이었다. 이렇게 과열된 유아교육 중에서 요즘 특히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조기 영어교육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관심을 쏟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이중 어릴수록 언어습득이 쉽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원인으로 꼽힌다. 뇌의 언어습득 장치는 생후 18개월부터 6세까지 가장 왕성하게 작동하므로 어른에 비해 아이들의 언어습득 속도가 훨씬 더 빠르며. 언어의 체계적인 습득이나 언어표현활동이 인지발달에도 도움을 준다는 의견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하듯 각종 조기 영어교육의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치원에서도 원생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오로지 영어로만 말하는 영어 유치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매주 두 번 집을 방문해 아이와 놀면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영어보모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영어동화를 읽어 주는 영어모임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조기 영어열풍은 인터넷 사이트에도 영향을 미쳐 어린이 영어교육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하여. 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게임. 동화 등의 영어교육 콘텐츠들을 제공하고 있다. - 중앙일보 2002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