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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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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스펙터클한 골목길 문화 / 우무석 시인

  • 기사입력 : 2007-07-20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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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집 근처에 새 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나는 유서깊다는 마산성호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그렇게 부르면 내 삶에서의 실존적 감각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으므로 나는 `국민학교'라 부르는 게 훨씬 살갑다)를 다녔다. 나의 통학길은 한국전쟁 때 피란온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는 성호동과 추산동의 산동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빈한한 동네 뒷골목의 아침 저녁 나절을 지나다니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락을 들었고, 처마 낮은 집에서 부부들이 다투는 소리도 들어가면서 일상성의 경험과 정서를 익혀왔다. 또 골목풍경에서는 술 취한 어른들의 욕지기 같은 냄새와 고만고만한 나즈막한 지붕 아래로 피어나오던 된장찌개 냄새와 갈치나 전어 같은 생선 굽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런 냄새를 기억하면 내 유년의 과거가 나른하게 깨어나 내 마음을 조용히 출렁이게 해놓는다. 골목길은 내 인생의 첫인상이었으며, 역사문화적인 메타포의 공간이었던 셈. 그래서 마산의 모든 골목길은 내게 퍽 익숙하다. 어쩌면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도 골목길의 향수는 그 몸의 영혼이 기억하는 미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산에서는 삶의 풍경 속의 골목이라는 공간이 이미 사라져버렸거나 재개발로 인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골목이 갖고 있는 말랑말랑한 현실의 스펙터클한 형상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한 현장의 미학이 도시의 획일적인 개발계획에 의해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변화되고 있는 중이다.
     
    올해 1월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은 도시의 삶과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도시민속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박물관조사팀은 서울시 아현동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곳이 뉴타운 개발로 사라질 곳이기 때문에 기록을 남겨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현시장에서 산꼭대기까지 일제강점기 건축물과 현대건축물이 공존하고 있고 산업화 시기 도시민의 전형적 정착지로서 기록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들은 아현동의 한 옥탑방을 얻어 조사캠프를 차렸으며, 이주민들의 정착과정, 건축물, 여성상공인들의 삶 등을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그 역사와 문화를 조사하고 있다. 당연히 의식주 문화까지 면밀히 기록하게 되는데 심지어 아이들이 벽에 그린 낙서까지도 조사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아현동의 전형적 가옥이나 이발소를 복원하고 마을 모습을 통째로 디지털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한편 대구의 `거리시민문화연대'라는 단체는 2001년부터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시의 골목들을 조사하여 그곳에 담긴 역사, 문화, 문화재, 시장, 건축, 정치생활사를 조사하였다. 그들은 `골목'이라는 코드를 통해 산업개발 위주의 현사회가 소외시키거나 방기시킨 것들을 다시 회복시킨다는 취지로 대구 골목 곳곳의 숨은 생활사 흔적을 찾아내어 2002년에는 `골목은 살아 있다'라는 대구 골목문화 가이드북을 전국 처음으로 펴내었고 관광, 시티투어, 답사, 체험학습 등의 문화콘텐츠 개발로 연결짓는 소기의 성과도 얻었다. 그리고 `대구를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주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시역사문화체험학교를 열어 학생들에게 골목에 고스란히 스며든 생활사를 피부로 느끼게끔 골목추적놀이를 하고서 골목지도 그리기를 하면서 골목을 돌아다니고 배우게 한다. 이 단체가 행하는 조사와 교육이 바로 지방분권이자 문화분권운동인 것이며, 자연적 시간을 문화적 공간으로 변용시킴으로써 지역정체성을 획득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고향 마산 역시 서울과 대구에 못지않은 문화역사성의 두터운 층위를 구성하고 있고 다른 도시보다도 독특한 정체성이 있으며 풍광의 아름다움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지닌 도시이다. 롤랑 바르트는 `도시는 이야기 텍스트'라고 했는데, 도시는 인간에게 말을 걸고 인간은 도시를 이야기함으로써 삶이 짜여지는 공간인 것이다. 그 도시의 전통에 있어서 `골목'만큼 이야기가 축적된 곳도 없기 때문에 마산에 있어서 `골목문화'는 도시문화의 상징들 가운데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산은 구질하고 제멋대로인 골목을 하찮은 것이라 여겨 도시문화에 대한 성찰 없이 개발모델규범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대신 상업적 구매장소인 도심 큰길가에 `골목'이란 수식을 아무렇게 붙여놓고 상술의 게시판 역할을 하게 했다. 차라리 산동네 한쪽을 `있는 그대로' 살려서, 가난했지만 인간적 삶이 풍부했던 한 시대를 보여주는 `생활사 공간으로서 골목'을 남겨놓는 것도 문화의 한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무석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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