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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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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아프간 피랍을 보면서 나라를 생각한다/조용호(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7-08-10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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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KBS­1TV 드라마 `대조영'에서 뜨고 있는 설인귀(薛仁貴)는 당(唐)나라 장수이다. 나당(羅唐) 7년 전쟁 중이던 671년 신라 문무왕은 설인귀로부터 장문의 협박편지를 받는다. 이른바 `설인귀서'이다.

      내용인즉 `신라는 唐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의 예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무왕은 `답설인귀서'(答薛仁貴書)를 통해 “당이 `평양 이남과 백제는 신라에 귀속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고구려와 백제에 각각 안동도호부와 웅진도독부를 두어 통치하고, 신라까지 병합하려 하고 있다”며 전쟁의 책임이 唐에 있음을 밝혔다.

      또한 “신라는 백제군에 포위당한 당군을 구원하고, 평양성을 함락하는 등 전공이 크다”며 “당의 1만 장병이 신라 군량을 먹어 그들의 피와 살은 모두 신라의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676년 문무왕은 당군을 몰아내고 민족사 최초의 통일을 이루어낸다. 그리고는 감포 앞바다 수중릉에 묻혀 왜국의 침입을 막는 해룡(海龍)이 되었다.

      1300년 전의 일이 오늘에 거론되는 것은 당시 초강대국가인 唐과 당당히 맞선 문무왕의 전쟁능력과 외교를 말하기 위함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는 국력과 외교력을 겸비해야 하는 것, 비록 외세 이용과 대동강·원산만 이남 땅이라는 지적도 있긴 하나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무력으로 몰아낸 사실에서 신라 삼국통일의 자주적 성격을 알 수 있다. `답설인귀서'는 唐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당전쟁의 당위성을 천명한 사실상의 외교문서였다.

      2007년 여름, 우리 국민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사건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력과 외교력을 떠올리게 된다. 7월 19일 피랍된 지 무려 22일이 경과하면서도 특별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현실을 비추어 말함이다. 정부의 노력에도, 그동안 두 사람은 목숨을 잃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치인은 “인질이 미국인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반문했다. 그랬다면 아마도 세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고강도 압박이 전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국인 피랍사건은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의 국력과 외교력이 부족하고, 특히 참여정부에서 미국 등 우방국들에게 맹방 의식을 덜 심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박금자 본지 워싱턴특파원은 “한국 국회의원 수십명이 와도 소용 없다”며 “지난 68년 미국 함정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됐을 때 한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거론되기도 하는 분위기”라고 현지 사정을 전해왔다.

      아프가니스탄의 복잡한 정파적 종교적 갈등도 사태를 꼬이게 하는 원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현 카르자이 대통령 정부는 한시바삐 내전을 종식하고 싶고, 탈레반은 2001년에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기 위해 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인질과 군 간부를 맞교환하자는 요구도 이 때문이다. 탈레반이 성전(聖戰)을 외쳐도 이면에는 정권을 잡기 위한 혈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력과 외교력이 쇠하면 나라가 외침에 시달린다. 1590년 일본 정세를 살피고 온 조선통신사 중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말이 달라 우왕좌왕하던 끝에 2년 후 왜국의 침공을 당했으니 임진왜란이다.

      명(明)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새로 부상한 후금(後金)이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하자, 화친하자는 주화론과 싸우자는 주전론이 맞섰고, 인조는 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다. 명성황후의 시해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한 아관파천도 러·일 사이에서 나라가 힘이 없어 당한 굴욕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국권 피탈도 마찬가지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근저는 힘이고, 외교이다. 우리 국민 21명이 아직도 그 척박한 땅 아프가니스탄에 잡혀있는 절박한 사태를 보면서 과연 우리가 세계 12대 경제대국이냐 하는 자문을 해 본다. 대한민국이 국력과 외교력이라는 실험대에서 세계의 시험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정부는 탈레반과 직접협상을 시도하는 등 매우 힘든 노력을 하고 있다.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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