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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속의 옛날 마산 -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07-08-24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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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이 원앙어라 하고. 해원앙이라 하기도 한다. 생김새는 연어와 비슷하다. 입이 작고. 비늘은 비단같고. 아가미는 붉다. 꼬리는 길고. 몸통은 짧아 마치 제비같다. 이 물고기는 암컷과 수컷이 반드시 따라다니는데 수컷이 가면 암컷이 수컷의 꼬리를 물고서는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 이곳 토박이들은 이 물고기를 잡으면 눈알을 빼내어 잘 말렸다가 사내는 암컷의 눈을 차고 계집은 수컷의 눈알을 차면. 부부가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강선혜 역문. 『유배객. 세상을 알다』에서)

    조선 후기 문인인 김려(1766-1822)라는 사람이 썼다는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중 원앙어에 관해 서술한 한 대목이다. 원앙새처럼 암수 금슬이 좋아서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 고기가 현재 어떤 어종을 가리키는지는 갯가 사람인 나도 짐작키 어렵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 『우해이어보』는 김려가 진해에 유배와 3년째 되던 1803년에 쓴 한국 최초의 어보이며. 널리 알려진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술보다 11년이나 앞선 책이다. 더욱이 이 책의 무대인 우해(牛海)는 진해(鎭海:현재의 진해시가 아니다)의 다른 이름으로서 지금의 행정구역상으로는 마산시 진동면 일대를 일컫기에. 마산사람인 나로서는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다.

    이 책을 지은 김려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潭庭)으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한 문인이다. 15세때 성균관에 들어가 촉망받는 인재로 인정을 받으나 집안이 노론 시파 계열의 비중있는 명문으로 당쟁의 화를 많이 입었다. 1797년 벗인 강이천(姜彛天)의 유언비어사건에 연루되어 국토 북쪽 끝인 부령으로 유배를 갔다가 1801년 또다시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이번에는 남쪽 끝 바닷가 진해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어 10년을 더 살게 된다.

    김려는 진해로 와서는 처음 밤고개(율티)마을 소금 굽는 사람 집에 세들어 살면서 ‘어부들과 너나들이로 지내면서 물고기와 조개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물고기 잡는 데는 마음 쓰지 않고. 다만 매일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매일 보지 못했던’ 경이로운 바다생물을 보는 것을 즐기면서 뒷날 해배되어 고향에 돌아간다면 ‘이곳의 풍물’을 우스개삼아 이야기하려고 『우해이어보』를 썼다고 그 서문에 밝혀 놓았다.

    『우해이어보』에는 어류 53항목. 갑각류 8항목. 패류 11항목 등 모두 72항목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항목에는 어류명칭과 분포. 종류. 잡는 방법. 조리방법. 유통과정 등의 박물학적 경험지식을 기록하였다. 또한 매 항목마다 해당어류와 관련한 풍속과 풍물을 노래한 ‘우산잡곡(牛山雜曲)’이란 기속시(紀俗詩)를 덧붙여 놓은 인문과학서이기도 하다.

    왕문어 항목에 덧댄 풍속시 한 수. “고요한 밤 깊은 골짜기 달빛은 희미한데 / 왕문어가 이끼 낀 바위에 요란스레 그림자를 흔드니 / 마을 처자가 정분난 중인 줄 착각하고서 / 황급히 빈 침상에서 내려와 사립문을 여네.”(강선혜 역문)

    어촌의 깊은 밤. 달빛 드리운 장지문에 왕문어 대가리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잠 못들고 있던 어촌 아낙(처녀였을까. 아니면 과부였을까?)이 자신과 정분난 중이 찾아온 줄 알고서 반가운 마음에 황급히 사립문을 열려고 뛰쳐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염정에 달뜬 여성심리를 희학적으로 그린 시인의 능청스런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김려는 진해 어부들의 친밀한 사귐과 세상살이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을 글로 써내면서 억울하고 비참한 유배객의 우울한 심사를 지워나갔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산물과 풍속을 유심히 살핀 이유도 그의 학문적 열정이 남다른 탓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앞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뒷날 해배된 뒤 함양군수로 임소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과 벗의 시문을 정리해서 『담정총서(潭庭叢書)』를 남겼다.

    실제 김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면서 충실한 글쟁이였다. 다만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는 텍스트라서 그 전달의 특수성 때문에 지금은 그 효용가치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그의 기록은 소중하다. 그가 있었기에 옛날 마산 앞바다의 물고기와 어촌의 생생한 풍경이 이나마도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료들은 세월의 뒤켠에 먼지 앉힌 채로 묵혀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서 지역사의 재구성을 위해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민들에게 알려서 현재적 의미를 갖게해야 된다. 이런 일에는 당연히 해당 지자체가 앞장서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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