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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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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박 신부님께

  • 기사입력 : 2007-09-19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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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해(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요한보스코 신부)

    시간에 쫓기어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바쁜 출근길 위의 사람들 속에 섞여 이리저리 밀치고 밀리며 버스를 탑니다. 하루 종일 꼼꼼하게 부품을 끼우고. 직장 동료들과 몰래 수다 떨다. 큼직한 접시에 밥을 듬뿍 담아 요것조것 맛난 반찬에 점심이 꿀맛입니다.

    나른한 오후 감기는 눈을 비벼 잠을 깨우면 달그리한 간식도 있답니다. 오늘 일을 정리하고 내일 일거리를 준비한 후. 뉘엿한 해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피곤하지만 행복합니다.
    저에게도 잔소리하는 직장 상사가 있고. 티격대다가도 얼른 감싸주는 동료가 있습니다.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적금 통장도 있고. 적지만 기다려지는 월급날과 빨간 날이 있습니다. 올 추석 명절엔 저도 부모님께. 조카에게 용돈을 줍니다. 친지들이 모이면 직장 생활의 애환에 대하여 사뭇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저도 어엿한 직장인이기 때문입니다.

    박 신부님. 우리 복지관 직업 재활센터에서 일하는 장애인 ‘김씨’ 이야기입니다.
    소박하지만 성실하고 작은 일에도 진지하지만. 기쁜 일이 생기면 약간은 일그러진 입술을 크게 벌리고 유쾌하게 웃을 줄 아는 친구입니다.
    누구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삶이 너무나 지루하고 심지어 죽음처럼 무료해집니다. 그러나 모든 장애인들이 ‘김씨’ 같은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기에 하릴없이 시간만 죽여야 하는 장애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작업장을 마련하고. 일거리를 만들어 오고. 동으로 서로 북으로 남으로 사방팔방 위로 아래로 가로 세로 뛰어 봅니다. 어느 순간 숨이 턱 차오릅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아직도 열악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득하게 높은 벽으로 와 닿습니다.

    박 신부님. 세상에 어렵게 사는 분은 참으로 많습니다(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행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든 분들을 다 도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느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장애인들만이라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저는 언제나 “일자리”라고 말합니다. 우리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주어져서.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박 신부님. 이제 곧 추석입니다. 돌아오는. 돌아가는 때입니다. 아무리 멀고 험할지라도 고향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 서면 무엇이 힘들겠습니까? 설렘으로 기다리는 부모형제 친지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풍성한 선물 보따리와 이야깃거리를 안고 모두 부푼 가슴으로 길을 나설 것입니다. 이 길 위에 우리 장애인들도 함께 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넉넉한 신부님의 마음처럼 기분 좋은 추석 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장애인을 위해 어설프게 일하는 동생 백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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