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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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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가을날 시로 읽는 사람과 인생 / 조용호 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7-10-19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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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오래 전 가을. 류시화의 시 한 편을 칼럼에 싣자 노선생님이 전화 와 “참 좋더라”고 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 시집 1쇄가 91년 나왔고. 101쇄가 2001년이었으니 지금은 몇 쇄인지도 모르겠다. 오래돼 다소 진부한 느낌이 있지만 여전히 가슴을 흔든다. 가을날 읽는 한 편의 사랑의 시가 이런 것이다. 대기는 청량해지고. 풀벌레 울음소리에 온 밤이 스산해진다. 뭔가 공허하여 추억과 사랑과 인생이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군대 졸병시절 이 시가 적힌 편지 한 장을 보내 애인을 ‘뿅’가게 만들어 결혼했고. 이후 아내는 평생을 두고 가장 좋아하는 시로 여긴다는 어느 사나이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대를 천 명의 사나이가 사랑한다면 그 천 명 중에는 나. 라졸도 끼어있을 거요. 백 명의 사나이가 사랑한다면 그 백 명 중에 나. 라졸도 끼어있을 거요.(중략) 단 한 사람뿐이라면. 그가 라졸이라는 걸 알 거요. 그러나 그대를 사랑하는 사나이가 한 사람도 없게 된다면 이 라졸이 죽었다는 것을 그대는 알게 될 거요’. -라졸 가마토의 <사랑의 노래> 중에서.

    사랑 타령도 잠시이다. 현실은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하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요즘의 화두는 혁신과 처세. 그리고 돈이다. 지난 주말 신문사 전 사원 연수에서 강사로 나온 구자복 중진공 경남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명확한 목표와 뜨거운 열정. 풍부한 인간미. 긍정심을 가져라. <먹기>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마음 먹기>이고. 가장 쉬운 것은 <나이 먹기>이다’. 원고 한 장 없이 80분 간을 시종일관 긴장과 흥미. 유머로 해치워버린 그의 솜씨에 꼼짝도 못했다. 촌에 이런 프로가 있었던가.

    그런데 실천은 어렵다. 구 본부장의 말이 백 번 맞지만 실행하려면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이거야말로 스트레스이다. 욕 좀 먹어도 내 멋대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임금도 자식 다스리기 어렵다. 영조가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게 한 뒤 후회하여. ‘애도한다’는 의미로 사도(思悼)세자라는 시호를 내렸다. 세상사 인간사 맘대로 안 되는 것이다.

    서점에 가보면 돈벌었다는 책만 있고. 까먹었다는 책은 없다. 부자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떨구는게 샐러리맨이다. 그런데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고 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한 술 더 떠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은 “승률 70% 이상일 때 투자한다”고 했다. 돈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남의 세상’ 일 같다. 하지만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는 돈 버는 7가지 방법 중 첫째는 자신을 더욱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고. 일곱째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했으니 일단 따라 해 볼 일이다.

    사무엘 울만이라는 사람이 ‘청춘’(Youth)이라는 시를 쓴 것이 78세 때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떠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느니.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느니(이하 중략)’. 맥아더 장군이 이 시를 책상 위 액자에 넣고 늘 암송했다. 종군기자 팔머가 이를 보고 순식간에 빠져들어 1945년 12월호 다이제스트에 ‘어떻게 젊게 살 것인가’(How to stay young)라고 소개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이 가을날. 삶과 인생을 반추한다. 아. 바보처럼 살아온 게 아닌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지금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현재에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행복의 비결이란? 땅위를 걷는 것이다’-<행복의 비결>.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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