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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27) 섬진강 (5·끝)구례~하동

바다와 만나 새 생명 잉태하고…

  • 기사입력 : 2007-10-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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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원지에서 생명의 싹을 틔운 섬진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좁은 산골짜기를 비집고 흘러 굽이굽이 흘러왔다.

    때로는 성난 사자처럼 굉음을 내다가도 들판을 가로 지를 때는 순한 양처럼 조용히 흐르며 생명의 물을 흘려 적셔주기도 하였다.

    세월을 망각한 채 흘러내린 섬진강은 이제 하동포구에 닿으면서 바다와 만나 새로운 생명들을 잉태하고 있었다.

    섬진강을 따라 기행을 하면서 강만 보고 따라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였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고 친절하였다. 강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 화엄사

    화엄사는 섬진강이 하동 방향으로 굽어 돌아가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4km 떨어진 지리산 자락에 있다. 서기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고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라 붙였다고 한다.

    아담한 다포식 불이문을 지나 금강문 못미쳐 오른쪽에 있는 거북 모양의 화강석 받침대에 벽암국일도대선사비가 있다. 벽암대사비 오른쪽 아래에 사각형 오석으로 된 차일혁 총경 공적비가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차일혁 총경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전쟁 때 육군대위로 참전하였다. 그 후 전투경찰에 투신, 작전상 사찰당우를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도 화엄사를 비롯하여 천은사 쌍계사 백양사 선운사 그리고 덕유산 사찰까지 잿더미를 면하게 하여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문화적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화엄사의 전각의 배치는 직선보다는 곡선을 활용한 지혜가 엿보인다. 불이문을 지나 약 30도 쯤 방향을 바꾸어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비껴 놓은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한여름 천왕문을 지나니 석축을 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당을 달아두었던 석재 당간이 훼손될까 조심스럽게 주지 종삼 스님께서 공사를 독려하고 있었다.

    다시 몇 계단 올라서면 보제루에 이르고 다른 절에서는 보제루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화엄사는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보제루 계단에 앉아 고개를 들어 시선을 주면 동·서 두 개의 탑이 사선 방향으로 보이며 동탑의 윗부분보다 한 단 높은 위에 조선시대의 우수한 예술성이 잘 나타나 있는 대웅전이 있고 서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다.

    각황전은 신라시대 때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 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 맞춘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각황전 앞에 서 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 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통일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각황전 왼쪽 동백나무가 우거진 휘어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효대라는 언덕이 있다.

    이곳에 있는 4사자 3층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 천은사

    구례에서 지리산을 관통하는 지방도로 861번을 따라 오리쯤 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를 지나면 도로 왼쪽에 천은사 주차장이 있고 끝에 화려한 다포식 일주문이 있는데 ‘智異山泉隱寺’현판의 글씨가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지리산 속에 부는 바람결 같기도 하여 눈길을 끈다. 천은사에 가는 사람이야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하지만, 천은사를 통과하는 사람들은 주차장 옆으로 지나간다. 문화재관람 요금을 받는 억지가 기발하다. 매표소 앞에 콘크리트 일주문을 지어 놓았으니 도로를 통과하는 것은 절집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천은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인도 승려인 덕운선사가 처음 세워 절 이름을 감로사라 하였다.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물이 있어 감로사라 하였는데, 이 물을 마시면 흐렸던 정신도 맑아진다고 하였다. 영조 49년(1773)에 화재로 절의 모든 건물이 불탄 뒤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물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혜암스님이 복원하면서 샘이 숨었다 하여 천은사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고 한다.

    보제루 계단에 앉아보면 마주보고 있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설선당, 승희당, 첨성각이 한 영역을 이루고, 한 단 높은 뒤쪽으로는 팔상전, 응진전, 진영당, 칠성각 등이 또 하나의 영역을 이룬다. 극락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 운조루

    구례읍에서 섬진강을 따라가는 19번 국도를 잠시 달리다 보면 토지면 오미리에서 넓은 들판을 만난다.

    토지라는 이름은 원래 금가락지를 토해냈다는 뜻이라고 한다. 토지면 오미리 일대는 금환락지, 곧 풍요와 부귀 영화가 마르지 않는 남한의 3대 명당이라 알려져 왔다. 운조루는 이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가옥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은 가옥의 사랑채인데, 지금은 가옥 전체를 운조루라 부르고 있다.

    현재 운조루에는 진주에서 시집왔다는 유이주씨의 10대 며느리 곽영숙(37·☏011-9305-7705)씨가 유지 관리를 하면서 유창한 해설을 하고 있다.

    운조루가 명당이라고 하지만 눈길이 더욱 가는 것은 건축의 배치구성이다. 운조루의 옛 모습을 살펴보면 1000여평의 대지에 건평이 100평 넘는 보기 드문 전체 건물구성은 ―자형 행랑채(24칸),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고, 주인이 거처하던 외사랑인 운조루가 16칸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 있어 특이하다. 안채는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며 평면이 트인 ㅁ자형이다. 중심부분은 대청이며, 좌우로 큰방과 작은방이 자리잡고 있다. 부엌에 있는 쌀뒤주를 보면 운조루가 많은 재난을 피한 이유를 알 수 있다.

    # 평사리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으며 평사리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형제봉 중턱 300m에 위치한 고소성은 신라시대 축성한 것으로 섬진강과 동정호를 발 아래 두고 있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는 김동언(51) 명예참판을 만나는 즐거움이 하나 더 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여행 TIP. 맛집

    지리산대통밥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화엄사 입구) ☏ 061-783-0997. 전라남도 지정 남도음식명가. 대통밥 1만원, 대통밥(특) 1만5000원. 죽염으로 요리.

    조양숯불갈비 :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661-2(화개장터 부근) ☏ 055-883-8200. 돼지떡갈비 전문. 1인분 6000원. 최고의 육질과 냄새가 나지 않는 담백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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