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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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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28) 남강①-남덕유산 참샘~화림동 계곡

남강 물줄기 남덕유산서 솟아나고…

  • 기사입력 : 2007-1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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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덕유산에 있는 남강 발원지 계곡.


    남강의 발원지 남덕유산 참샘을 찾아가는 길에는 늦가을 안개가 산을 따라 내리고 있었다.

    옛날에는 몇 날을 유유자적하며 걸어서 가던 길들이 느림의 아름다움보다는 자동차로 인해 분주한 일상 속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들은 바라보고 느낌을 가져볼 여유도 없이 우리들의 생활만큼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린다.

    산길로 접어드는 산자락 곳곳에도 겨울을 곱게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남강의 발원지와 조산마을= 서부 경남의 젖줄 남강의 발원지 참샘은 남덕유산(해발 1507.4m)에 있다.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조산마을 노인회 회장 표경대(74)씨가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에 동행하였다.

    산행이 시작되는 영각사에서부터 등산이 취미와 특기라고 말해왔던 필자보다 70대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앞서갔다. 땀을 흘리며 1시간여를 오르고 나니 참샘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준비해둔 바가지로 물을 받아 목을 축이고 나니 상쾌함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내려오는 길에 제법 물줄기가 굵어지는 계곡으로 들어가 보니 원시림 잡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낙엽이 발목을 덮고 있었다.

    남덕유산의 첫 마을인 조산마을 노인정에는 동네노인들이 먹을 김치를 담그는 날이라 부녀회 회원들이 모여 일손이 분주했다. 노인 회장 댁으로 들어서니 이내 김장김치에 고향의 정취가 풍기는 정갈스러운 밥상이 나왔다. 젊은 시절 30년 동안 객지생활을 하며 자식들을 교육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도회지 생활에서 얻은 위궤양도 3년 정도 새벽에 일어나 남덕유산 기를 받은 냉수를 마셨더니 씻은 듯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조산마을의 노인정에는 마을에서 살다가 후손이 없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토지를 기증하여 마을 노인정이 부자라고 창고에 가득 쌓인 볏가마를 자랑했다. 고인들의 제사를 노인정에서 지내준다고 한다. 노인정은 덕유산을 오르는 산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각사= 조산마을을 지나 남덕유산 길목에 있는 영각사는 876년(신라 헌강왕 2)에 심광대사가 창건하였다. 1770년(조선 영조 46) 상언스님이 장경각을 짓고 ‘화엄경’ 판목을 새겨 봉안하였다. 6·25전쟁 때 요사채로 쓰이는 구광루를 제외하고 소실되어 1959년 중건하였다. 화려함이나 번잡함이 없는 절집으로 거대함에 주눅이 들기보다는 일주문이 없는 입구에는 담장을 기와로 쌓아 고향집 대문을 들어서는 포근한 느낌을 주도록 하였다.

    전각은 근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극락전과 화엄전·삼성각 등이 있고, 산사의 굴뚝이 문화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가 6기 있는데 모두 석종형으로, 절 입구에 있는 해운(海雲)과 용월의 부도 2기만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상시장= 상당한 수준에 이른 목공예까지 하는 표 회장의 전송을 받으며 조산마을에서 하천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거창과 무주로 갈라지는 육십령 고갯길이다. 우리땅 어디인들 구수한 전설이 없을 리 없겠지만 덕유산을 옆에 끼고 소백산맥을 가로질러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를 이어주는 육십령은 안의 감영에서 육십리요, 장수 감영에서 육십리라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크고 작은 고개를 육십개 넘어야 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옛날에는 산적들이 많아서 주막에서 장정들을 육십명씩 모아서 함께 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강을 따라 내려서니 서상면 소재지이다. 도회지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다방 간판과 차를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아가씨들의 모습이 생동감을 주었다. 서상 장날이라 장터 안쪽으로 들어서니 54년째 곡식을 파는 가게를 열고 있는 김명분(84)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아름다운 미소를 보낸다. 나이를 물었더니 오늘은 74세이고 집에 가면 84세, 관광 가면 64세라고 익살을 부린다.

    인근에서 대파 당파를 파는 맹영자(67) 할머니도 16년째 장을 따라 다닌다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애교 섞인 협박(?)을 한다. 화려한 도회지의 진열대에 놓인 백화점보다 시골장터에는 정겨움과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화림동 계곡= 국도 26번을 따라 안의 방향으로 흐르는 60여리 금천(남강의 상류)을 화림동 계곡이라 한다. 서상면-서하면을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색과 음풍농월을 즐겨하던 옛 선비들이 정자를 세웠으니 화림동의 팔담팔정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이 남아 있었으나, 농월정마저 소실되어 버렸다.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지 못하고 소실된 것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거연정= 함양군 서하면 봉전마을앞 남강천의 암반 위에 건립되어 있다. 무지개 다리인 화림교를 통해 드나들도록 되어 있는데, 주변의 노송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1613년에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이 세웠으며, 1885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누각인 정자가 놓인 자리는 바닥이 고르지 않고 들쭉날쭉한 바위섬이지만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맞추어 가며 팔각의 주춧돌을 놓고 추녀 네 귀에 활주를 세워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했다. 정자 주변에 식당 건물을 훨씬 화려하게 지어 정자가 주는 아름다움이 반감되어 있다.

    군자정= 거연정에서 150m 아래 물가 너럭바위 위에 사뿐히 앉아있는 중층 누각건물로서, 내부에는 방을 들이지 않는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누각이다. 전세걸이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하였다. 정면의 우측으로 판재로 만든 계단을 두어 누로 오르게 하였고, 4면 모두 기둥의 바깥쪽으로 약 15~18cm 정도를 연장하여 계자난간을 둘렀다.

    거연정과 군자정 사이에 콘크리트 교량이 가로막고 있고,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정자가 갖는 고즈넉함은 상실되어 버렸다.

    동호정= 군자정에서 600m 떨어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 있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 손인 장재헌이 1895년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추녀 네 귀에 세운 활주가 있고, 나무의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멋을 자연스레 살린 1층 기둥이 아름다우며, 통나무 두 개를 잇대어 비스듬히 세우고 도끼로 내리쳐 홈을 파서 만든 계단이 운치가 있다.

    강 가운데에는 노래 부르는 장소(영가대), 악기를 연주하는 곳(금적암), 술을 마시며 즐기던 곳(차일암)을 포함하며,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널찍한 암반이 있어 풍류를 즐기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농월정= 동호정에서 10리쯤 내려오면 다른 정자와는 달리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팔작지붕이며 네 귀에 활주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10월 5일 오후 7시30분쯤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완전히 소실되어 지금은 주춧돌과 중수비만 정자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농월정(弄月亭)터에는 수많은 반석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 수많은 너럭바위 위를 혹은 옆을 쉴 새 없이 갈라져 흐르는 물줄기가 작은 폭포와 못을 이루기도 한다. 달을 희롱한다는 뜻의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가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이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TIP. 맛집

    ▲산호장 가든: 돌솥쌈밥전문. 함양군 서상면 육십령고개 입구. ☏ 964-1173. 덕유산 자락에서 나오는 무공해 나물로 음식을 만드는 시골밥상.

    ▲시골 순두부: 순두부, 해물전골, 모두부 전문집. 함양군 서하면 다곡리. ☏ 963-5976. 함양 지역에서 나오는 순수한 우리 콩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토종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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