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29) 남강②-심진동 계곡에서 지우천을 따라

  • 기사입력 : 2008-01-08 00:00:00
  •   

  • 함양 기백산 정상





    마산mbc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영택 펜화 전시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펜화 속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 농월정이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휘영청 달 밝은 날 정자 난간에 앉아 물에 달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달을 희롱한다’고 할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졌었다.

    호남지방에 폭설이 내렸다고 하는 날 화림동 계곡을 다시 찾았다. 멀리 보이는 남덕유산 봉우리에도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주춧돌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농월정이 있던 자리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복원을 두고 갈등이 있는 듯 이름을 굳이 밝히지 말아 달라는 인근 가게 주인도 농월정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고개만 돌리면 허전하다고 했다.

    심진동계곡 용추폭포= 발길을 재촉하였다. 안의면 소재지에 오면 화림동 계곡에서 흘러내린 남강과 심진동 계곡에서 흘러내린 지우천이 아우라지를 이루며 남강천을 만든다. 용추계곡으로 더욱 익숙해진 심진동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옛날 안의현에는 세 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 삼동’이라 하였다.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심진동 계곡은 해발 1000m가 넘는 황석산(1190m) 거망산(1184m) 월봉산(1279.2m) 금원산(1352.5m) 기백산(1330.8m) 등이 병풍처럼 늘어서다 보니 산들이 겹치는 곳에 생겨나는 계곡도 깊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산내골, 가는골, 불당골, 지장골, 시영골, 도수골, 말박골에서 모여드는 물들은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루고 남강천의 또 다른 발원지 지우천을 만들어낸다.

    기백산의 옛 이름이 비가 내릴 것을 미리 알았다는 지우산이었다. 금원산과 월봉산의 능선이 수망령을 만들어 거창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는 물줄기는 심진동 계곡으로 모여든다.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사평마을에는 수려한 40여리 용추 계곡을 끼고 용추자연휴양림(☏ 055-963-9611)이 있다.

    여름에는 휴양림 이용하기가 어렵지만 함박눈이 내린 호젓한 겨울철에는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랫마을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와 염소 소리까지도 정겹게 들려온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산줄기와 맑은 하늘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계곡을 옆에 두고 좁은 임도를 따라 오리쯤 내려서면 넓은 반석 위쪽에 매바위가 있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계곡 사이로 굉음을 내는 용추폭포를 만나게 된다. 심진동 계곡의 깊은 곳에서 모이고 모여서 이룬 물이 우렁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성난 용이 몸부림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30m의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을 이루고 폭포의 폭은 25m쯤 된다. 폭포의 깊이는 실꾸러미 하나가 다 풀릴 정도로 깊다고 한다.

    용추사 장수사터= 우렁찬 폭포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면 용추사가 자리잡고 있다.

    용추사는 장수사의 4대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절집이다. 487년(신라 소지왕 9) 각연대사가 창건하였고 당시에는 용추암이라고 불렀다.

    각연이 장수사를 세운 뒤 부속 암자 중 하나로 지은 절이다. 고려 말에 자초(自超:1327∼1405)가 중수하고 수도처로 삼았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59년 재건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대웅전을 새로 짓는 등 불사를 하였고 산내 암자는 무학대사와 매바위 전설이 서린 은신암이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종루, 삼성각, 명부전과 문화재 2점이 끓어진 옛 장수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용추사를 내려서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허허로운 넓은 터가 나타난다. 초입에 웅장한 팔작지붕 아래에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옛 장수사 일주문이 외롭게 절터를 지키고 있다.

    1950년 전쟁으로 장수사가 폐사되자 1953년 안의면 당본리 봉황대로 옮긴 뒤 1959년에 현 위치로 옮겨 중수하였다.

    약 3m 정도의 둘레와 높이를 갖는 굵은 원기둥을 4m 정도 간격으로 세운 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을 올렸다. 다포계 건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하는 공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절터에 서면 가득 피어난 들풀들이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용추 폭포의 물소리만 고적한 절터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일주문의 규모로 보아 번창했던 시절의 규모를 마음속으로만 느껴 볼 뿐이다.

    걸음을 재촉하니 길옆에 가지런히 정돈된 부도전이 있다.

    장수사의 부도전은 일주문 아래쪽에 석종형의 부도 9기가 있고 일주문을 지나 휴양림 방향으로 100m 정도 가면 가장 큰 것이 문곡당, 청심당, 연우당 축훈 스님의 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 3기가 있다.

    부도는 고승들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절집의 역사나 규모를 짐작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심원정 연암의 물레방아 황석산성= 황석산 등산로가 있는 사평교 인근에 심원정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건물 심원정은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고종 3년(1806년)에 세운 것이다.

    수수하고 고풍스런 정자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조선말기 실학자이자 안의현감을 지냈던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 문물을 둘러보고 온 후 안심마을에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한 것을 기념하는 물레방아가 안의면 하원리 매표소 인근에 있다.

    사평교에서 황석산(1190m)으로 오르면 산마루를 따라 골짜기를 감싸며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에 삼국시대에 쌓은 황석산성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임진왜란 때는 큰 전투가 있던 곳이다. 성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

    당시에는 성의 둘레가 이십 리가 넘었다고 한다. 선조 30년(1597)에 왜군이 침입하자 이원익은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판단해 주민들과 성을 지켰으나 백사림이 도망가자 결국 함락당했다고 한다. 당시 순절한 백성들의 원혼을 달래는 황암사당이 화림동 계곡을 바라보는 곳에 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맛집

    ▲ 휴양림 식당: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사평마을.☎(055)963-1860. 심진동 계곡의 무공해 재료 사용. 토종닭과 오리요리 3만5000원. 산채정식 5000원. 바비큐 요리.

    ▲ 천궁 산장: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851.☎(055)962-0082. 30년 전통의 변함없는 노력의 손맛. 단호박오리훈제구이. 흑염소 코스요리. 염소 생고기 구이 1만3000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양영석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