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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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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사주 이야기-역마살(驛馬殺)

  • 기사입력 : 2008-01-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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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밤 저녁상을 물린 뒤 노인은 옥화에게 인사를 청했다. 살기는 구례에 사는데 이번엔 경상도 쪽으로 벌이를 떠나온 길이라 하였다. 본시 여수(麗水)가 고향인데 젊어서 친구를 따라 한때 구례에 와서도 살다가, 그 뒤 목포로 광주로 전전하였고, 나중 진도(珍島)로 건너가 거기서 열여덟 해 사는 동안 그만 머리털까지 세어져서는, 그래 몇 해 전부터 도로 구례에 돌아와 사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지만 저런 큰 애기를 데리고 어떻게 다니느냐고 옥화가 묻는 말에 그러잖아도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아무데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떠나지 않고는 두 식구가 가만히 굶을 판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이라 했다.’

    김동리(1913~1995)의 화개장터가 배경인 단편소설 ‘역마’에서 역마살이 낀 체장수 노인의 운명적인 삶을 표현한 장면이다. 이 소설은 역마살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운명관이 인간의 삶의 질서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형상화하였다. 등장인물은 자신의 사주와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일방적인 패배라기보다는 팔자 소관이라는 한국적 운명관에 순종함으로써 도리어 생명의 리듬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따라 살아갈 때 행복을 느낀다는 인식이다.

    이렇듯 역마살이 사주에 있으면 한 곳에 정착하지를 못하고 늘 분주하게 떠돌아다니므로 흉하게 본다. 특히 도화살(桃花殺)과 역마살이 동주(同柱-같이 붙어 있는 것)하면 정부(情夫)와 함께 타향으로 도주한다고 해서 살풀이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과거에는 집을 떠나서 살게 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다 보니, 집을 떠나 사는 일이 많은 보부상 등도, 사회적인 천민계층에 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집을 떠나 사는 요즘에도, 객지생활한다는 것은 어쩐지 서글픈 의미처럼 느껴지는 것도, 과거의 그런 사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현대여성에게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가 스튜어디스고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는 나다니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예전에야 관운(官運)이 좋은 사람을 최고로 쳤다. 하지만 요즘, 관운보다 재운(財運)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관찰하게 된다. 재운이 좋고 역마가 있으면 ‘발전이 빠르고 해외에 진출하여 명성을 떨친다’고 했다. 무역업, 운수업, 유통업 등도 모두 역마와 관련이 있는 직종이다. 그래서 요즘 사주에 역마살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본다.

    얼마 전 캐나다에 산다는 한 여성이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내방을 하였는데 어김없이 역마살이 있었다. 유학을 갔다가 거기서 학위 받고 지금의 남편도 만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언제쯤 정식 교수가 되겠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여성의 경우 운(運)의 흐름이 좋으므로 머지않아 뜻을 이루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마로 인해 멀리 외국에 가서 뜻을 펼치는 경우다.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밝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한반도 대운하로 물길을 낸다니 강호의 숨어있는 인재들이 그 물길을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우리도 구경꾼이 아니다. 대운하 또한 우리 지역을 거쳐 가니 이제 슬슬 세상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눈을 크게 뜨고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 한 분야에 내 자리가 있을 것이다. 사주에 역마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돌아다녀 보자. 기회는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정연태 四柱이야기

    역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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