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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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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음식은 신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사소한 수양이 아니요, 그것이 바로 기도일 수도 …”

  • 기사입력 : 2008-01-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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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은 신이다.”

    즉 아남 브라마(Anam Brahma)는 힌두교의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말이다.

    음식이 신이란 표현은 여러 잣대로 헤집어 볼 수 있겠지만, 신도 그 주방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가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음식물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낮은 자가 높은 자요, 천박한 것이 고귀한 것이라는 돌고 도는 이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생명력을 주는 그 음식물에 한 번쯤은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지난 세기 러시아의 부처님 구르지예프는 인간기계가 필요로 하는 음식의 종류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음식, 코로 마시는 공기, 느낌(impression)들이 다 그런 것이란다. 세상을 보면서 갖게 되는 ‘느낌’이란 음식에 대해서 다소 부연하자면, 사람의 몸이란 하나의 화학공장 같은 것인데,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이란 것도 위장이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채워 주어야만 하는 그 나름대로의 ‘음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대면하면서 갖게 되는 ‘느낌’이란 가장 중요한 음식인데, 일용할 양식인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어서 그렇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고, 또 사는 것이 다 먹자고 하는 짓이라면, 그토록 잘난 나란 물건도 결국은 내가 먹고 마신 것들의 종합운동장이 아니겠는가.

    대승의 깃발을 휘날리는 금강경의 첫 머리도 먹는 이야기로 그 막이 오르고, 최후의 만찬도 그렇고, 해월 최시형의 ‘밥 사상’도 밥을 거룩한 제사로까지 신분상승을 시키지 않았는가.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이라는 향연도 결국은 비스듬히 누워서 배가 불러야만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발정한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갖다 주는 수놈도 그렇고, 콧대 높은 여성도 음식 대접으로 일단은 갑옷을 풀 수 있다 하는 플레이 보이들의 경험담도 다 언간의 소식을 전한다.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들 먹자. 그런데 어떻게 먹어야 그 놈의 음식이 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관상이란 얼굴만 자세히 뜯어 보는 것 같지만, 넓은 의미로는 일거수일투족 밥 먹는 모양까지를 다 보는 것인데, 백범 김구 선생의 진지 잡수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과연 민족의 지도자이시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니,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역시 사소한 수양이 아니요, 그것이 바로 기도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우리들의 식탁 풍경은, 생사의 관건으로 ‘딸가닥 꿀꺽’, 먹는 것인지 먹히는 것인지 주객을 구분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여유 있게 천천히 한 박자만 느리게 씹고 나름대로의 심원한 맛을 음미한다면, 그 또한 기품있는 기도의 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뭐 민족의 지도자까지 될 필요야 있을까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그 신성한 음식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그리 나쁠 성싶지는 않다.

    음식은 신이다.

    김종천(원불교 신마산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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