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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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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산사에 눈꽃이 분분한 날에

성전 스님(남해 용문사 주지)
부·명예·권력은 영원한 기쁨 안돼

  • 기사입력 : 2008-0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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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에 눈꽃이 분분하게 날린다. 허공 가운데서 눈은 꽃으로 피었으나 지상에서는 물이 되어 흩어져 간다. 허공 가운데에서는 꽃이었으나 지상에서 물이 되는 눈은 내게 어떤 것도 고정된 모습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 역시 나를 말하고 있지만 어떤 모습을 나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나인가. 아니면 얼굴이 곱던 청년 시절의 모습이 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중년을 지나는 주름지고 가히 곱지 않은 얼굴을 가진 내가 나인가. 그 어떤 것도 나는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나라면 나는 이미 없는 것이고 지금의 나를 나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것도 역시 틀린 말이 된다. 나는 다만 이미지의 동일성을 가지고 나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형상의 나는 허구일 뿐이다. 허공 가운데 꽃인 눈이 이 지상에 내리면 물이 되듯이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다만 저 허공을 꽃으로 채우는 눈과 같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착한다.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어 하고 맛난 것을 보면 먹고 싶어 하고 아름다운 곳에 가면 머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설사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우리는 그냥 잠시 기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기쁨은 조금만 지나면 일상적인 것이 되고 우린 또 다른 것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우리는 또 다른 만족의 출구를 찾아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부나 명예나 권력이 우리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진정 우리가 찾던 가치라면 우리는 그 안에서 더없이 평화로워야만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평화로운 자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부자도 다투고 권력자도 투쟁한다는 것은 그것이 진정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의 평화나 평안이 없는 것은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분히 날리는 눈을 보며 나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세상이 있어 이토록 아름다울 것인가. 설사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어딘가에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 내리는 이 산야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믿고만 싶다. 부처는 그랬다. 깨닫기 전에는 동천에서 별이 빛나는 것을 보았고 깨닫고 나서는 동천에 자신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별과 하나가 된 것이다. 분분히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나는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 가운데에 눈이 되어 날리는 나를 보고만 싶었다. 내가 있다고 믿는 데서 오는 그 분별의 거리를 지우고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나는 온통 아름다움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부처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부처님은 저 허공 가운데에 눈꽃이 되어 내리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눈꽃들은 모두가 부처다. 편편이 날리는 저 눈꽃 하나하나가 다 부처인 것만 같아 나는 허공의 눈꽃을 향하여 합장하고 발원한다. 이 육신이 나의 참 모습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청빈한 수행자의 걸음을 걸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저 허공에 눈이 내리는가. 부처가 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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