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11일 (화)
전체메뉴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30) 남강③-함양 안의~지곡면

연암의 정취 강따라 유유히 흐르고…

  • 기사입력 : 2008-02-12 00:00:00
  •   


  • 지우천을 따라 내려서는데 산등성이에 하얀 눈 모자를 쓰고 있는 황석산, 기백산이 배웅하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어 겨울잠을 자고 있는 물레방아가 있는 공원에서 안의면 신안리 물레방아 떡 마을까지는 10리가 채 안된다.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자동차에서 내려 찬바람을 맞으며 걷기로 했다. 천천히 50분쯤 걸어가니 안심마을이다. 깊은 계곡을 따라 소리를 내며 흐르던 지우천이 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유유히 흐르는 유순한 강이 된다. 이마에 솟은 땀을 강물에 실어 보내며 물에 손을 담그니 짜릿함이 깊게 느껴진다. 여름에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지우천을 따라 달려보리라 마음먹었다.

    물레방아 체험마을

    안심마을은 조선말기 실학자이자 안의 현감을 지냈던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 문물을 둘러보고 온 후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 가동했던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 마을이다.

    이장을 지냈다는 정언섭(66)씨는 마을 자랑이 대단하다. 아름다운 솔숲(송대) 속에서 따뜻한 농촌의 정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싶거나 봄에 산삼보다 좋다는 산나물을 캐고 싶다면 주저 없이 오라고 한다. 인근에 곤충 체험장과 염색, 장류 체험장도 생겼고 가을철 벼 타작과 밤줍기 등 체험도 한다고 한다.

    허삼둘 가옥, 박지원 사적비

    용추휴게소에서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안의 소재지로 갔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니 잡초가 우거진 텃밭 건너 낮은 돌담장 안에 허삼둘 가옥이 있다.

    동향한 넓은 터에 북향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T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바깥행랑채가 있다. 사랑채 안쪽에는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안 행랑채, 그리고 곳간이 있어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은 안채, 특히 부엌이 주택 전체의 중심을 잡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의 꺾인 부분을 한번 접은 모양이고 꺾인 좌우가 거의 대등한 규모이다. 그 중앙에 부엌이 있는데, 부엌은 거의 정사각형으로 내부에는 기둥이 두 개만 서 있어 넓게 보인다.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는 앞에 퇴를 두고 높게 한 구조가 특이하다. 부엌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방들과 대청이 겹집의 형태로 배치돼 있다. 사랑채는 난간을 둘러서 누집처럼 꾸몄다. 1918년 윤대흥이라는 사람이 허씨 문중에 장가들어 지은 집인데 가옥이름을 안주인 허삼둘의 이름을 따른 것이 매우 흥미롭다.

    부엌으로 드나드는 통로에 설치한 시렁과 선반이 살림살이에 매우 유용하도록 안살림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2004년 방화로 보이는 화재로 건물 여러 곳에 그을린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 문화재 관리에 아쉬움이 남는다.

    마을길을 따라 나서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 연암 박지원 사적비가 있다. 연암은 55세 되던 1792년 이곳 안의 현감으로 부임해 5년을 머물렀다. 그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40여편이 이곳에서 쓰여졌고, 중국 방문 때 배운 자연과학 지식으로 이곳에서 실험적 작업을 했다.

    광풍루, 약초시장

    화림동천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지우천이 만나서 안의현을 유유히 흐르는 강변에 우뚝 서있는 2층 누각이 광풍루이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팔작지붕집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세종 7년(1425년)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 그 후 성종 25년(1494)에 정여창이 다시 짓고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꿨다. 광풍루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우람한 건물이다.

    광풍루에서 강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32개의 점포와 향토음식점 한의원 약초전시관 등을 갖춘 함양토종약초시장이 있다. 지리산과 덕유산의 약초꾼들이 채집한 온갖 약재들이 수집되고 있으며, 관광지 노점상에서 파는 약재보다 가격이 저렴한 생약수집소 주인 송성실씨가 달여주는 약차로 추위를 달래고 강을 따라 승안사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승안사지

    안의에서 지우천이 남강천으로 이름을 바꾼 강을 따라 잠시 가면 수동면 우동리 깊은 산속에 있는 승안사지로 가는 길이다. 이정표라고는 없는 좁은 길을 따라서 올라서면 제법 넓은 평지가 나온다. 이곳에 세월을 잃어버린 고려시대의 탑 1기가 단아한 모습으로 있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는데, 위층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새겨두었다. 또한 위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조각을 새겨 둘러놓았는데, 이러한 장식은 보기가 쉽지 않다. 2층부터는 몸돌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데, 1층의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을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의 경사는 급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며 네 귀퉁이가 거의 들려있지 않아 둔중해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 위에 복발과 앙화가 남아 있다. 최근 탑 주변에 보호대를 설치하면서 지대석이 흙에 묻혀 있다.

    승안사지 3층 석탑에서 20m 가량 떨어진 곳에 불상 1기가 있다. 오른팔이 파손돼 있고, 하체가 묻혀 있으나 상체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머리 부분은 신체와 비례가 맞지 않아 매우 어색한 느낌을 준다. 또한 선각에 가까운 띠주름식의 옷주름은 형식화되었고, 좁은 어깨, 평판적이고 직선적인 신체의 윤곽선 등은 생동감이 느슨해지는 느낌을 준다. 당대 큰 불상에 나타난 조형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임이 분명하다. 민가 주변에 있고 보호각이 설치돼 눈과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3층탑을 지나 낮은 산등성이로 오르면 정여창 선생 묘지가 있는데, 이곳에 있는 석물마저도 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함양일두 고택

    승안사지를 나와 남강천을 건너면 지곡면 개평리 중요민속자료 제186호 ‘함양일두 고택’이다. 1984년 지정 당시에는 ‘함양정병호가옥’이었으나 정여창 선생의 호를 따서 2007년 1월 명칭을 변경했다.

    마을로 들어서면 고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한 교회가 있고 작은 과수원을 지나면 일두 고택 대문이다. 웅장한 솟을대문에는 정려(旌閭)를 게시한 문패가 4개 걸려 있다. 대문에 들어서니 보수를 하는 인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 집은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 정여창(1450∼1504년)의 옛집으로,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문에서 곧바로 가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가면 사랑채가 나온다.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사랑채는 ㄱ자 모양이다. 일각문을 들어서서 사랑채 옆면을 따라가면 다시 중문이 있고 이 문을 지나야 一자 모양의 큼직한 안채가 있다. 안채는 약 300년 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왼쪽에는 아랫방 채가 있고 안채 뒤쪽으로는 별당과 안사랑채가 있다. 또 안채 뒤 따로 쌓은 담장 안에는 가묘가 있다.

    사랑채를 지은 건축적 안목이 대단하다. 돌과 나무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엄격한 법도에 따라 사랑채 앞마당에 아름다운 정원을 꾸몄는데, 집안에서 보면 정원이고 밖에서 보면 담장이다. 지금은 원래의 옛 모습이 훼손돼 아쉽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여행tip. 맛집

    ▲ 대중식당: ☏ 055)962-0666. 안의면 당본리 12-1. 갈비탕. 갈비를 토막내 거품과 불순물을 제거하면서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송송 썬 파와 양념을 넣고 끓인 갈비탕은 구수한 감칠 맛이 일품이다.

    ▲ 할매순대: ☏ 055)962-4306 안의면 석천리 245. 순대집. 각종 야채와 선지, 찹쌀을 돼지창자에 넣고 쪄서 순대를 푸짐하게 넣고 끓인 국밥은 5일장과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양영석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