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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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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택일

  • 기사입력 : 2008-0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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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의 일이다. 시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며느리의 손을 이끌고 내방을 했다. 가만히 보니 며느리의 배가 잔뜩 부른 것이 출산일이 임박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손주 태어날 날을 좀 잡아 주이소”한다. 귀한 첫 손자를 보는 일인데 기왕이면 좋은 날을 택해서 출산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술하실 겁니까? 하니 그렇다고 한다. 3대 독자 집안에 종가(宗家)의 맏이라 어떻게 하든 좋은 팔자를 타고나야 한다는 생각을 시어머니는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끔씩 출산택일을 하러 방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선시대 단종 때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成三問,1418~1456)의 출생에 관한 일화가 생각난다.

    성삼문의 외할아버지는 사주 명리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인물로서 외손자인 성삼문이 태어날 예정 시간을 계산해보니 두시간 정도 늦게 태어나야만 사주가 좋다는 것을 감지했다.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서 산실(産室)에서는 산실 밖 외할아버지께 3번이나 출산해도 되는지를 물었고 예정시간이 되기도 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출산하고만 일화가 전해진다. 산실 밖에서 기다리던 성삼문의 외할아버지는 3번 물었다고 해서 이름을 삼문(三問)이라 지었다고 한다.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손자의 최후가 비참하게 끝나는 것을 예측이라도 하였던지 조금만 더 참지 못하고 태어난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었으나 그 또한 손자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만약 산모가 더 참고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삼문은 39세에 죽었는데 1시간만 늦게 태어났더라도 환갑까지는 살았으리라는 것이 당시 역술인들의 이야기다.

    어느 시간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팔자(八字) 가운데 두자(二字)가 바뀐다. 특히 태어나는 시(時)의 간지(干支)는 사주를 조절하는 방향키와 같은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사람의 말년 운세와 관련된다고 해석하므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한다. 시를 모르면 사주 해석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봐야 한다. 예전 시계가 흔치 않은 시절에는 첫닭 울 때 또는 쇠죽 끓일 때 등 웃지 못할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여 그 시간을 유추하는 데 곤란을 겪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출생시간을 조절하는 제왕절개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주란 태어나면서 처음 호흡하는 순간, 즉 천지의 음양오행 기운의 성분이 태아의 몸속으로 흡입되어 들어오는 바로 그 시각을 10간 12지로 문서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호흡하는 시점은 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택일이란 명리학에 근거한 사주팔자, 즉 연월일시가 음양오행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을 찾는 작업이다. 좋은 사주는 음양오행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이 좋고 더울 때는 서늘한 것이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출산택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각에 맞춰 출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제왕절개로 수술을 하는 경우 시간뿐 아니라 날짜조절도 약간은 가능한데도 야간에는 안 되며 또 무슨 이유로든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지질 않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그런 것을 보면 태어나는 팔자도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녀의 좋은 사주를 위해서는 입태일(入胎日-합궁일)을 조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계산해보면 얼마든지 길일(吉日)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수술까지 해가면서 팔자 고치는 일을 권하고 싶지 않다.

    출산택일을 하러온 며느리의 예정일을 보니 딱히 나쁜 사주 구성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요즘 병원에서는 몇 시간 정도의 분만조절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 가운데 좋은 시간을 골라서 수술하지 말고 자연 분만할 것을 당부해서 돌려보냈다. 고부 간에 안도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연태 四柱이야기

    역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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