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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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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오염된 바다를 향해 가노라

이정희(진해영광교회 목사)
사명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기 위해 오늘도 새 마음으로 발걸음 내달린다

  • 기사입력 : 2008-02-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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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애에 큰 영향을 주었거나, 지금도 크게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하루에 두 번이나 동일하게 받아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질문 앞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머리에 당장 떠오르는 그 어떤 인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그런 대상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쩐지 거의 다 뇌리에서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 탁류의 세월 속에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수없이 오고 가는 각종 사회의 병리 현상들 가운데서 그동안 존경해왔든 상당수의 이름들을 머리에서 하나씩 지워야만 했고, 그들을 통해 가졌던 바른 지도자상의 사표(師表)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존경할 자를 찾기보다는 연륜과 위치로 볼 때 바로 나 자신이 자녀들과 특정 다수인들에게 그 바라봄의 대상이 되어야 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연약하다. 그러기에 나 자신도 그들에게 오히려 실망을 주는 하나의 군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내 탓이오’가 아닌 계속 ‘네 탓이오’를 외치는 외식자의 모습일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성의 회한을 가져보기도 한다.

    이 사회는 오늘도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으로 오염된 태안 앞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고, 숭례문의 가슴 아픈 방화사건과 계속되는 정치권의 싸움들, 그리고 각종 사회의 병리현상들로 인하여 지친 평민들의 영혼들을 위로하고 계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지금, 광야의 슬픈 로뎀나무 아래 앉아 탈진하여 탄식하는 엘리야처럼 “주여 어찌하오리까?”만 외치고 있으니 그것이 더욱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어차피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 사육신의 성삼문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생육신의 김시습처럼 바람과 구름과 벗하며, 산천의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사명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해 보고 싶다. 그러나 그들만큼의 의분과 절개가 나에게 있는가도 문제지만, 현실의 모든 환경이 그것을 충분하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을 그저 그런대로 격류에 떠내려가는 한 사람의 나약한 필부로 살아갈 것 같아 그것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지친 몸과 마음의 탈진의 현장에 오늘도 오셔서 함께하여 주시는 분이 계신다. 오셔서 위로하여 주시고 어루만지시며,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하여 주시는 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이런 자리에 앉아만 있느냐, 그래도 너를 희망 삼고 말없이 기도로 지원해주는 가족들과 수많은 지인들이 있지 않느냐” 라고 질책하시는 그분! 바로 엘리야를 일깨워 주시던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렇다! 바로 그분이 계시기에, 나는 오늘도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 본다. 그리고는 메마른 나 자신의 피곤한 심신의 광야를 다시 극복하고 오염된 사회의 얼룩진 현실의 바다를 향해 청정해역의 꿈을 펼쳐본다. 그리고 진리의 횃불과 정화의 소금을 손에 들고 사명의 발걸음으로 닫힌 나의 문을 열고 떠난다. 내가 아직 그들의 사표가 되고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나에게 희망을 걸고 기다려 주는 이들과 기름띠를 제거해 달라고 외쳐대는 해변의 수많은 조약돌들을 향해 오늘도 다시 새로운 마음의 발걸음으로 내달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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