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32) 남강⑤-함양읍 상림~수동면 남강천

위천 따라 가는 길엔 봄이 무르익고…

  • 기사입력 : 2008-04-01 00:00:00
  •   

  • 봄은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강을 따라가는 길에는 겨울 동안 얼어있던 땅에서 생명의 힘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겨울을 견딘 푸른 보리가 힘차게 자라는 들판에 서니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한다. 숲에서 생명의 싹이 트고 있는 함양 상림을 지나 위천을 따라 내려오니, 분주하게 달리는 소형트럭의 확성기에서 산불 예방 안내 방송이 조용한 농촌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표정 없는 도회지 같으면 소음으로 들려 짜증이 나겠지만 봄이 오는 강가에서는 애교로 들렸다. 봄 햇살이 내리는 강턱에는 쑥과 냉이가 고개를 내밀고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매화꽃은 흰색과 붉은색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산수유도 봄의 전령이 되고 있었다. 강을 따라가는 봄 여행길은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학사루·느티나무= 함양군청 앞 도로를 건너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자주 올랐다 하여 학사루라 불리는 누각이 있다. 원래는 관아에 딸린 건물로 옆에 객사가 있었고, 동쪽에는 제운루, 서쪽에는 청상루, 남쪽에는 망악루가 있었다고 전한다. 지방관리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글을 쓰며 몸과 마음을 달래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숙종 18년(1692)에 다시 지었으며, 원래 조선조 시대 객사 자리였던 함양초등학교 안에 있었으나 1979년에 함양군청 정문 앞에 옮겨 지었다. 학사루 기둥에는 고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는 작자 미상의 56자 주련시가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김종직이 이곳 군수로 있을 때 학사루에 걸린 유자광의 시를 내리도록 한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1498)가 일어났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학사루에서 100m쯤 떨어진 함양초등학교에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제407호 함양 학사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느티나무는 높이 22.2m이고 둘레 7.25m로 가지가 우람하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현감으로 있을 때 심었다고 한다.

    △함양석조여래좌상·오도재= 학사루에서 교산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아담한 함양중학교가 있다. 잘 가꾸어진 화단 앞에 고려시대 불상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석조여래좌상 1기가 있다. 대좌의 높이까지 포함하여 4m가 넘는 거대한 조각으로 불상 뒤의 광배는 없어지고, 불상의 얼굴과 오른손, 무릎 및 대좌 일부가 없어진 상태이다.

    얼굴은 몹시 닳아 있고 머리도 파손이 심하여 섬세한 조각은 알 수 없으나 큼직하고 강건해 보인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으며, 신체는 건장한 편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몸을 가로지르는 옷주름은 평행을 이루고 있는데 조금은 형식적인 느낌이다. 오른팔은 굵고 우람하며, 손은 깨졌지만 손끝이 땅을 가리키고 있는 형태로 보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으로 보인다. 대좌는 4각형인데 윗부분의 앞뒷면은 깨어지고 양쪽 옆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좌의 중간부분에는 눈모양의 안상이 새겨지고 아랫부분에는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제작되었을 당시에는 어느 절집의 대웅전에 안치되어 중생을 바라보았을 터이지만, 지금은 부서지고 깨어진 채 함양중학교 노천에 앉아 있다. 불상의 방향마저도 서쪽을 향하고 있어 복원할 때 세심함을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을 하면서 오일장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함양읍 용평리 일대 중앙시장은 2, 7일에 선다. 장터에 들어서니 털털거리는 시골 할아버지 경운기에 가득 싣고 나온 채소와 산나물이 보기만 해도 정겹다. 장롱 속에 두었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 촌로들의 물건 흥정하는 소리에 시장은 금방 웃음꽃이 만발한다. 장터에서 안부도 묻고 대소사도 챙기며 김이 피어오르는 국밥과 막걸리 한 잔으로 회포도 풀어낸다.

    함양 시장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우리나라 100대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오도재로 향했다. 오도재(773m)는 삼봉산(1187m)과 법화산(991m)이 만나는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로 예부터 영남학파 종조인 김종직 선생을 비롯해 정여창, 유호인 선생, 서산대사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걸음을 멈추며 지리산을 노래했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 등지의 해산물이 이 고개를 지나 전라북도, 경상북도, 충청도 지방으로 운송된 육상 교역로였다.

    1888년(고종25년)까지 오도재 아래 제한역(현재 함양읍 구룡리 조동)을 두어 이곳을 통행하는 사람과 말, 산물을 관장케 했던 것으로 보아 오도재를 통행한 교통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도로가 만들어지고 역이 폐지되면서 수많은 길손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던 오도재는 옛날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삼봉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내어주는 쉼터가 되어 왔다. 2003년 11월 30일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선 이곳 오도재에 지리산 가는 길이 새로이 뚫려 전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계서원·청계서원= 기백산과 안의를 거쳐 남천을 따라 내려오다가 만나지 못했던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을 찾아 수동면 원평리로 향했다. 정여창 고택과 멀지 않은 남계서원은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에 지었고 4년 후에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4년(1612)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앞쪽 낮은 곳에는 공부하는 강학공간을 두었고 뒤쪽 높은 곳에는 사당을 두어 제향공간을 이룬 전학후문에 배치를 하였다. 누문인 봉수루를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앞쪽 양 옆으로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양정재와 보인재가 있다. 내삼문 안쪽으로 사당이 있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 밖에 전사청과 고직사·묘정비각 등이 있으며,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다. 지척에 있는 청계서원은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들과 함께 조의제문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희생됐다. 글이 뛰어났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했다. 관리사를 통해 들어서면 단출한 구경재와 동재, 서재, 홍남문, 솟을삼문 등의 건물이 있다.


    △함양 사근산성=
    함양군 수동면 하산리 사근장터 뒤 연화산(443.2m)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이다. 멀리서 성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만 입구를 찾을 수 없어 수동면 사무소에 가서 길을 물었더니 안내에 성의가 부족했다. 몇 번을 헛걸음치다 겨우 찾은 길은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산성이 있는 수동면은 조선시대 경상도 지방 14개의 역길을 총괄하던 중심역인 사근역이 있던 곳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산성의 규모와 이곳이 신라와 백제 사이의 분쟁지역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삼국시대에 세워졌다는 것이 추측된다. 성은 부분적으로 무너졌으나 비교적 복원을 잘 하였다. 성의 둘레는 약 1218m이고, 연화산의 지형에 따라 쌓은 ‘ㅏ ’자형의 산성이다. 성벽은 네모난 가공석과 자연석을 약 5m 높이로 정연하게 어긋쌓기를 하였는데 밑바닥의 넓이가 5m나 된다. 호남지방의 곡창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tip-맛집

    ▲대성식당: 함양읍 용평리. 이명란. ☏ 055)963-2089. 소고기 국밥. 소머리와 사골 및 잡뼈를 가마솥에서 온종일 푹 고아내어 우려 나온 진한 국물에 야채와 양념을 넣어 고기의 누린 맛을 제거하고 맛을 살린 음식으로 예부터 과거 보는 나그네나 장터에서 인기 있었다.

    ▲돌담식당: 함양읍 용평리. 김종연. ☏ 055)963-3198. 염소불고기. 옛 문헌에 양지바른 야산에서 방목하는 흑염소는 동물 중에서 약효가 높다고 했다. 지방 함량이 소고기의 절반 정도이고 소화가 잘 되므로 고기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나 허약한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며, 약재와 양념으로 잘 재워 누린내를 없앤 불고기와 사골 국물은 영양에 맛까지 더한 보신 음식이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양영석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