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신앙칼럼] 정의와 공정, 거룩한 단순성

양태현 신부(천주교 마산교구 사목국장)

  • 기사입력 : 2008-05-09 00:00:00
  •   
  • 그늘이 없는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일찍이 기원전 700년경 무렵 활동하였던 구약 성경의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했던 장차 올 평화스러운 세상을 다시 한번 그려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중략)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모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이사야 11, 1-8)

    하지만 오늘날 우리 세상에는 그늘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들 자기만의 성을 높이 높이 쌓아 올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 개개인의 삶에서부터 세계 곳곳의 여러 지역에 이르기까지 들리는 것이라곤 자기만의 영역을 넓히고 높이려는 망치 소리뿐인 듯합니다. 서로의 문을 활짝 열고 따뜻한 양지의 행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노력들은 미약한 힘을 발휘할 뿐입니다.

    정치판을 보아도 그러하고 요사이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사회 여러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무섭고 가슴 아픈 사건 사고들을 바라보며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듭니다.

    각자는 나름대로의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압제하려 듭니다. 그리고 여러 구호와 제스처로 내면의 부끄러움을 감춘 채, 힘과 권력, 돈과 명예를 앞세워 모든 여론을 한 곳으로 몰아갑니다. 여기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고 이견을 달았다간 날벼락을 맞게 됩니다. 서로의 명분을 내세워 서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요즘 세상은 별다른 세상인가요?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고 신앙을 가진 저희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주신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이사야가 노래했던 평화스러운 세상은 이미 세상에 와있다라고 믿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정의(正義)와 공정(公正)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아모스 6, 24)라고 구약 성경의 아모스 예언자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자세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익이나 이해관계가 개입이 되면 비틀어지기 십상입니다. 내 것이 더 많고 더 크고 더 높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정의와 공정함을 숙제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세상에 와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평화스러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초대받은 건강한 시민들입니다. 돈과 명예, 어떠한 힘이나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양순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제 아무리 세상의 어떤 이념이나 인간적인 지혜들이 우리들의 사고를 혼란스럽게 하고 현혹한다 하더라도, 거룩하면서도 단순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거룩한 단순성, 그것은 바로 하늘을 무서워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일 것입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서영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