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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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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맛을 찾아 ④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이런 국을 어디 가서 먹어보겠노

  • 기사입력 : 2008-05-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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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어머리로 고아 낸 독특한 육수에 무시래기·된장 넣고 8시간 푹 끓여 갈치젓·마늘종 등 10여가지 반찬도


    새벽 3시, 통영 서호시장은 팔팔 뛰는 생선들과 시끌벅적한 고함소리로 기지개를 켠다.

    새벽장의 첫 흥정과 함께 장터의 시락국 가게들도 하나 둘씩 문을 열고 불위에 가마솥을 올리기 시작한다. 부글부글 끓는 시락국 냄새가 가게 밖으로 구수하게 흘러나올 때쯤, 장터사람들이 새벽이슬에 젖은 몸을 이끌고 시락국집 문을 두드린다.

    찬 바닷바람에 꽁꽁 언 손과 발도, 밤새 물차를 운전하느라 졸린 눈도, 값을 흥정하다 칼칼해진 목도, 뜨끈한 국을 들이켜는 순간에는 모두 녹아내린다. 이렇게 통영의 새벽은 정겨운 시락국 냄새로 열린다.

    서호시장에는 곳곳에 시락국집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랜 세월 새벽장을 열어온 곳은 40년 전통 ‘원조 시락국집’이다. 이곳은 새벽 3시부터 오전 11시까지가 가장 바쁘다.

    번잡한 시간을 피해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식당을 찾았다. 전화로 길을 묻는 기자에게 주인은 대장간 골목을 찾으라고 조언해줬다. 대장간 골목을 찾아 들어서니, 울퉁불퉁 칙칙한 골목 안 노란 간판이 눈에 띈다. ‘원조 시락국집’ 간판 옆에는 지상파 방송에 소개됐다는 글도 새겨져 있다.

    식당 내부는 초라하리만큼 작았다. 식당에 들어서면 ‘ㄱ’ 자로 꺾인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스테인리스스틸 용기가 길게 이어져 있고, 반찬 10여 가지가 담겨 있다.

    메뉴는 ‘말이국밥’ ‘따로국밥’ ‘국물’. 공기밥과 국을 따로 내오면 따로국밥(4000)이고, 국물에 밥 한 숟가락을 말아 나오면 말이국밥(3500원), 밥 없이 국물만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국물(3000원)인데 모두 같은 시락국이다.

    40년간 한 메뉴만 고집해 온 이 집 시락국의 특징은 독특한 육수에 있다. 통영 장어 머리를 3~4시간 고아낸 육수에 무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다시 7~8시간 푹 끓여 낸 것이다.

    안주인이 무쇠 가마솥에서 새벽녘에 끓여놓은 시래기국을 퍼내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 넣고 다시 끓인다. 팔팔 끓은 시래기국이 테이블에 놓이자, 먹는 법을 설명해 준다.

    “여기 반찬통에 있는 부추, 땡초, 양념장, 고춧가루, 김을 입맛에 맞춰 넣어 먹으면 돼요. 반찬은 셀프니깐 원하는 만큼 빈 그릇에 담아 먹으면 되고.”

    테이블 가운데 놓인 스테인리스스틸 반찬통에는 무김치, 갈치젓, 마늘종, 들깨조림, 멸치조림, 오징어 젓갈 등 10여 가지의 반찬이 소복히 담겨 있다. 반찬 가짓수에 감탄하며 뭘 먹을까 고민하는 기자에게 주인장은 놀라운 말을 덧붙인다. 이 반찬통이 냉장고라는 것. 손으로 만져보니 찹찹한 냉기가 흐른다. 다양한 반찬을 부담없이 신선하게 제공하기 위해 주인이 직접 개발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냉장고다.

    입맛 당기는 반찬을 그릇에 담고 자리에 앉아 시락국 맛을 본다. 우선 국에서 풍기는 된장냄새가 구수하다. 장어육수의 바다 맛과 무 시래기와 된장의 땅 맛이 만든 조화인가. 시락국의 얼큰함과 담백함이 일품이다. 10시간 가까이 푹 삶아진 무 시래기는 부드럽게 목을 넘어간다. 한 그릇 비우니 속이 든든해진다.

    옆 자리 서진욱(55)씨는 “21년 만에 찾았는데, 그 맛과 그 인심 그대로라 고맙게 먹고 간다”며 자리를 일어선다.

    21년 전에는 지금 주인장 김태선(57)씨의 이모할머니인 김봉안 할머니(5년 전 타계)가 식당을 운영할 때다. 몸이 불편해진 할머니의 뒤를 이어 10여년 전부터 김씨가 운영해 오고 있는 것이다.

    서씨는 “젊은 시절 밥을 먹으러 오면, 그릇이 바닥을 보일 새도 없이 자꾸 시래기국을 퍼주던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며 옛 추억을 회상했다.

    오랜 세월, 한 곳에서 식당을 열고 있는 만큼 서씨처럼 옛 추억을 더듬어 찾는 단골도 많다. 새벽에는 장터 사람들로, 오후에는 통영시민들로, 주말에는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365일 하루도 쉬지 않는다. 최근에는 부쩍 늘어난 손님 때문에 앞집과 옆집 터를 사서, 임시 식당으로 쓰고 있다.

    “이모 할머니의 식당뿐만이 아니라 맛과 정을 모두 물려받았다고 생각하고 통영의 새벽맛을 전하겠다”는 주인장 김씨의 푸근한 웃음이 든든하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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