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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2) 퓨전사극 어떻게 볼 것인가

  • 기사입력 : 2008-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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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소한 단어였던 ‘퓨전사극’이지만, 최근에는 모든 사극이 사실상 ‘퓨전사극’으로 만들어질 만큼 퓨전사극은 보편화되었다. 퓨전사극이란 사극을 좀 더 재미있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허구와 상상’을 접목시킨 사극이라는 뜻이다. 상업방송인 SBS는 말할 것이 없고, 전통적으로 ‘대하드라마’라고 하여 역사적 사실을 상당히 중시하는 KBS 1TV조차도 ‘대조영’(지난해 12월 종영), ‘대왕 세종’에서 보듯이 허구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넘쳐난다.

    KBS 2TV의 ‘쾌도 홍길동’(지난 3월 종영)의 경우 배경이 조선시대이지만 나라 이름과 임금의 이름은 전혀 다른 이름이 나온다. 오는 21일 첫선을 보이는 SBS의 퓨전사극 ‘일지매’에는 비행기도 등장하고 시한폭판도 터진다고 한다. 이 정도 상황에 이르면 이미 ‘사극’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이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단순하다. 역사학자들과 조금 연세 있는 분들,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저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격분하고, 나머지는 ‘재미만 있는데…’라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극에 빠져든다.

    이 반응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퓨전사극을 문제 삼는 이유는 대중매체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퓨전사극은 수백만명이 시청하며, 그로 인하여 사극에서 보여주는 거짓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뇌리 속에 박힌 ‘거짓’은 평생토록 왜곡된 역사관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퓨전사극을 긍정하는 이들은 대중성을 거론한다. 역사는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이다. 하지만 퓨전사극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 역사를 재미나게 풀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허구가 들어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반론이 이어진다. “허구라도 어느 정도껏 들어가야지, 아예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면 되느냐?”, “그럼 자료가 없는데 아예 드라마를 만들지 말라는 것인가?”

    두 논쟁은 팽팽하다. 하지만 두 논쟁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을까? 우선 사극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사극이란 ‘역사를 다루는 극’이라는 뜻이다. ‘극’이기 때문에 허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허구는 있었다. 심지어 비교적 자료가 상세한 조선왕조를 다룰 때도, 극의 재미를 위해서 다양한 사건들을 집어넣었다. 임금이 방귀를 몇 번 뀌었는지도 나오는 조선왕조실록이 떡 버티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극은 ‘극’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극의 해석을 놓고 이야기가 분분했을 뿐, 위와 같은 극단적인 대립은 없었다.

    그 이유는 사극의 허구 정도가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허구를 넣더라도 역사학자들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이뤄졌다. 즉, 허구가 역사적 사실 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퓨전사극이 나타나면서 허구가 극의 전반을 차지함에 따라 시청자들은 일종의 ‘허구 불감증’에 걸렸다. 허구가 없으면 극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사극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이미 ‘역사’라고 인지하지 않는다. 이런 시청자들의 경향을 간파한 제작자들은 더욱더 허구와 재미만을 추구하는 퓨전사극을 제작한다.

    이제는 사극 속에서 역사적 사실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었다. 역사를 그렸다는 사극은 넘쳐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그 속에서 죽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다행스럽게도(역사학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를 좀 알고 있다. 역사교육이 엉망이니 어쩌니 해도, 우리나라 왕조 순서를 ‘감’으로나마 정리할 수 있고,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과 회초리 맞아 가면서 배웠던 사회책과 국사책을 통해서 역사를 기초적으로는 알고 있다.

    ‘주몽이 누구예요? 정조대왕이 어느 왕조의 어떤 왕이죠?’라고 물으면, 굳이 사극이 방영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정 수준 대답할 수 있다. 이런 기초 상식이 없으면 사람들은 아예 사극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당장 에티오피아의 역사에 대해서 사극을 만든다고 하자. 아무리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쓰더라도 아무도 안 볼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일정한 상식이 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발전하는 것이고, 사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극은 대중들의 소망이나 심리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왜 개혁군주 정조에 열광하겠는가? 왜 고구려의 건국자 주몽에 열광하겠는가? 그것은 대중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변화의 욕구가 개혁군주 정조를 사극에 등장시켰고, 강력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욕구가 ‘주몽’이라는 사극을 등장시킨 것이다.

    하지만 사극 속에 역사가 죽음으로써 그 소망을 퓨전사극은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퓨전사극의 근원적인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논쟁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주몽을 보면서 우리 민족사에 대한 논쟁이 일지 않고, 이산을 보더라도 개혁과 기득권에 대한 논쟁은 일지 않는다. ‘역사’가 빠진 사극은 대중의 욕구를 시청률이라는 수치로 환원시킬 따름이다.

    사극은 대중의 욕구를 잘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바로미터이다. 이런 대중의 욕구를 제2, 제3의 소통으로 담아낼 그릇이 필요한 것이다. 사극에 허구가 몇 퍼센트인지, 사실이 몇 퍼센트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대중은 지금 현실의 갑갑증을 과거 속에서 풀려고 한다. 무엇이, 왜 그렇게 갑갑한지 물어보고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퓨전사극이 그 소통을 담을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는가? 퓨전사극을 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사진= (위에서부터) SBS `일지매'.  KBS 2 `대왕 세종`, KBS1 `대조영`, KBS 2 `쾌도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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