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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시절 억지로 먹던 보리밥이 …

이제는 추억을 비벼먹는 ‘웰빙 성찬’
장터의 맛을 찾아 ⑤ 밀양장 보리밥

  • 기사입력 : 2008-05-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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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푼이보리밥에 8가지 나물 반찬 강된장 넣어 비비면 구수함 절로


    여름이 오려나 보다. 들녘의 푸른 보리밭이 누렇게 색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이들이 보리밥을 추억하는 계절도 딱 이맘때다.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진한 사람 내음이 아름다웠던 그 시절, 그 애잔함은 보리밭과 시골장터가 닮아있다.

    옛날 그 보리밥 맛을 그리워하는 밀양 사람들이 장터를 찾는 것도 그 때문일까. 밀양장에는 그렇게 추억을 파는 ‘보리밥집’들이 2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7일 보리밥을 맛보기 위해 밀양장을 찾았다. 음식에 붙는 파리떼를 쫓기 위해 피워 올리는 모기향과 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엔 손수건을 쥔 채 연신 땀을 닦아내며 걷는 아낙네들이 장터의 풍경을 수놓고 있었다.

    내일동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밀양장은 5일장인 내일장(2·7일)과 맞붙어 더 큰 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장터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남해보리밥집으로 들어섰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을 피한다고 했건만 아직도 손님들이 북적댄다. 3평 남짓한 식당 중앙에 놓인 테이블 양쪽으로 10여명의 사람들이 빽빽하게 붙어 앉아있다. 테이블 가운데는 소복이 담긴 10여개의 반찬통들이 모여있는 것이 눈에 띈다.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고 보리밥을 시킨다. 먼저 내오는 것은 구수한 숭늉이다. 보리밥 누룽지를 오래 끓인 진국이다. 그리고 ‘강된장’과 쌀밥과 섞인 보리밥을 넉넉하게 담은 커다란 양푼이 등장한다. 그게 끝이다.

    주인장 정청애(61·밀양시 내이동) 사장은 테이블 위에 있는 반찬통에서 입맛에 맞는 찬을 밥 위에 얹고 비벼 먹으면 된다고 설명한다.

    집게로 열무김치, 우거지 된장무침, 미나리·콩나물 무침, 상추겉절이 등 8가지 반찬을 집어 넣는다. 양푼이 넘칠 듯 수북해졌다. 마지막으로 된장을 넣고 쓱쓱 비빈다. 고추장은 필요없다. 된장의 짭짤한 맛과 야채를 버무린 양념맛이 어우러져 간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마를 손에 얹고 잘 비벼진 밥을 한 숟가락 얹는다. 마지막으로 갈치젓을 얹고 한 입 크게 벌려 밀어 넣는다.

    쌉싸래한 나물과 반찬 맛, 꺼칠꺼칠한 보리밥의 맛이 어울려 씹을 틈도 없이 그대로 삼켜진다. 나물마다 산초가루를 넣어 향긋한 내음도 입안에서 맴돈다.

    20년 단골이라는 주경자(65·밀양시 삼문동)씨는 “옛날에는 이런 반찬으로 보리밥을 참 자주 먹었다”며 “시내 식당과는 달리 옛날 냄새 풍기는 옛날 반찬들은 여기서만 먹을 수 있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보리밥의 가격은 3500원, 저렴하다. 28년 전,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300원부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3500원 내고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지. 처음 시작할 때는 난전으로 시작했어. 당시 부산에서 보리밥이 한창 유행했는데, 내가 그걸 빨리 밀양장터에 들여온 거지(웃음). 어쨌든 사람들이 푸짐하게 맛있게 먹고 가면 가장 기분이 좋아.”

    푸짐해진 배를 안고 나오는 길, 주인장의 넉넉한 웃음이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든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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