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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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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지키는 행복

“계율·규칙을 지키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

  • 기사입력 : 2008-05-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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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께서 정해 주신 계율의 첫째 조항은 살생하지 마라이다. 계율은 불자들이 지켜야 할 계층별의 각종 규칙을 말한다. 어째서 수많은 계율의 첫 조항을 불살생으로 시작하셨을까? 살생은 생명에 대한 존엄을 해치고 마음 속 자비심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불자야, 살생하지 마라. 살생은 자비의 종자를 끊나니”라고 율장에서 이르셨다.

    그렇다 자비심이 없는 메마른 사람에게 웃음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가슴이 따습지 않은 사람에게 남을 위한 배려를 어떻게 기대하겠으며 배려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웃음 나누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규칙을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지키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큰 벌을 받기라도 하는 듯 두려워한다. 규칙이란 말을 들으면 학교 정문에서 회초리를 들고 흐트러진 학생을 잡아내어 벌을 세우는 규율부 선생님이나, 검사님 핏발 선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불가의 계율정신은 지키는 자의 기쁨을 위한 것이라서 오히려 타율성이나 강제성보다는 자율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지키지 않음으로 해서 잃게 되는 기쁨을 깊이 인식하게 함이다.

    계율을 설하고 마무리로 내리는 말씀에 “눈이 하나뿐인 사람이 한 눈을 잃지 않기 위해 소중히 지키듯 그렇게 계율을 지키라”라고 당부한다. 계율 즉 규칙은 밝고 편안한 생활로의 방향전환이다. 혼자만 누리면 그만이라고 집착하던 옹졸함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이며, 배려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이며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이다.

    기쁨은 웃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웃음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가능하다. 혼자 앉아 웃고 있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거나 철저한 위선자일 것이다.

    배려하지 않고는 함께 웃을 수 없으며 함께하지 않고는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불가의 모든 계율은 함께하는 충만을 항상 바탕으로 한다. 철저히 금하고 지극히 방지하는 세밀한 조항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키는 자의 자율성이 늘 존중되며 정한 이의 명령이나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지키면 개선되어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며, 지키지 않으면 탐욕의 함정에 빠져 긴긴 날을 홀로된 암흑에서 고통받게 될 것이다 하는 등식이다.

    아나율 존자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둘째 아들이었는데 출가해서도 둘째 기질과 부잣집 아들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계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게으르게 잠만 자고 있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부르시어 심하게 꾸짖으셨다. 그 후로 그는 전혀 잠을 자지 않는 뜬눈의 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으면 눈이 상한다고 주변에서 많이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세상의 나쁜 것만 보여주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눈이라면 없어도 좋지 않겠느냐?”며 수행을 계속했다.

    결국 그는 눈이 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의 눈이 열려 전보다 더 편안하다며 기뻐했다. 실로 그는 천안통이란 신통을 얻어서 눈이 없어도 세상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규칙 즉 계율은 이웃과 더불어 사회와 더불어 내가 공존하는데 절대 필요한 기쁨과 행복의 조건이다. 그것을 지킴으로 해서 다툼이 사라지고 평화가 이루어져 서로 행복하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인 것이다. 우리 모두 소중히 지켜야 한다. 운성 스님 진해 대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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