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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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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논술 주제별 논술강좌] (19) 민족의 개념과 역사

동일성 벗어나려면 차이를 긍정하라

  • 기사입력 : 2008-06-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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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시문

    [가] 피로 맺어진 민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 일부.

    [나-1]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에서 발췌.

    [나-2] : 근대국가의 통합을 위해 민족주의가 발생했고, 민족 개념이 만들어졌다. - 진중권 <민족주의>에서 발췌.

    [다] 민족 단결을 위해 국사 교과서는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간주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타자화했다. - 지수걸 <민족과 근대의 이중주>에서 발췌.

    [라] 타인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한다. -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에서 발췌.

    ☞논제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에 제시된 ‘민족의 개념’을 비교하시오.(400∼500자)

    [문제 2] 제시문 [다]에 제시된 역사 서술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나]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라]를 참고해 이런 역사 서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논술하시오.(900∼1000자)

    ☞출제 의도

     이 논제에서는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일성과 차이' 문제에 관해 다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단일민족과 단일문화를 강조해 정체성을 지키고, 국가적 단합을 이끌어 내려 했다. 이 때문에 이질문화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는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다른 문화와 자주 접촉하는 등 급격한 변화를 겪는 우리 현실에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를 검토하고 문제점의 원인을 분석해,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한다.
     
     

    ☞논제 분석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에 제시된 '민족의 개념'을 비교하시오. 400∼500자.
     여기서 '비교'란 제시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라는 것이다. 특히, 논술문제는 차이점을 묻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이해분석력'을 평가하려는 것이므로 각 제시문의 핵심내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먼저 필요하다. '민족의 개념'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 제시문의 내용을 파악한 후,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리해야 한다.
     
     [문제 2] 제시문 [다]에 제시된 역사 서술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나]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라]를 참고하여 이런 역사 서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논술하시오. 900∼1000자.
     문제의 세 가지 조건이 답안에 필수적인 내용이다. 이 분량이면 3~4문단 정도로 글을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한 문단에 300자가량씩 세 문단으로 작성하면 된다. 글을 작성할 때 서론이나 결론 문단을 넣으려는 학생도 있겠지만, 최근 대학에서는 서론이나 결론을 생략하고 본론만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 : 피로 맺어진 민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이란 글의 일부이다. 국어교과서에 실려서 학생들에게 친숙한 이 글에서는 민족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김구 선생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핏줄로 맺어진 혈육공동체이다. 그는 시대가 변해도 피로 맺어진 민족은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는 민족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영원하고 불변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이런 견해를 영속주의적 견해라고 부르며 현대의 민족은 고대나 중세의 민족에 뿌리를 둔다는 관점이다.
     
     제시문 [나-1] :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상상의 공동체》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은 민족에 대한 현대적 견해를 보여 준다.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특정한 객관적인 조건에 의해 생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특정한 지역 내에 특정한 공통점을 소유한 사람만을 민족이라고 상상한다.
     
     제시문 [나-2] : 근대국가의 통합을 위해 민족주의가 발생했고, 민족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 글에는 민족 개념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한 앤더슨의 견해가 설명됐다. 유럽에서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새롭게 형성된 공동체를 통합시킬 이념으로 민족주의가 출현했으며,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었다.
     
     제시문 [다] : 민족 단결을 위해 국사 교과서는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간주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타자화했다.
     지수걸이 쓴 <'민족'과 '근대'의 이중주〉에서 발췌한 글이며, 국사교과서 서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사교과서는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간주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이자, 변하지 않는 '선(善)'의 가치를 전유하는 민족을 주인공으로, 영웅서사의 기법으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민족'은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 타자를 요구했는데, 한국으로부터 선택된 타자는 일본 혹은 일본 제국주의였다.
     
     제시문 [라] : 타인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한다.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서 발췌한 글이다. '동일성'이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초래하므로 차이를 긍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글은 추상적이므로 현실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쉽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 속의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생각해 보자.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는 '정상'이나 '주류'라고 불리는 이들의 타자이다. '동일성'은 나와 타자, 문명과 자연, 남성과 여성, 정상인과 장애인, 우리와 이방인 같은 일련의 이항대립으로 중심과 주변을 구분한다. 동일성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차이를 긍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논술문 작성 방향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에서 언급된 민족의 개념을 정확히 숙지해 그것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할 능력이 있는지 측정하려 했다. 제시문 [가]와 [나]는 전제하는 '민족'의 개념이 서로 다르다. [가]의 민족은 혈통에 바탕을 둔 영구히 지속되는 개념이다. 영속적 민족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문화, 역사, 혈연 같은 객관적 조건을 공유한 사람의 집합체이다.
     반면 [나]에서는 민족이란 개념이 주관적 필요에 따라 상상된 것이라 말한다. 현대의 민족이란, 현대화를 거치며 만들어진 민족주의라는 주관적인 기준에서 상상된 공동체이다.
     답안을 작성할 때 첫 문장은 [가]와 [나]의 차이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중심문장이어야 한다. '비교'하려면 [가]와 [나]의 내용을 각각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짚어 주자.
     
     [문제 2]
     이 문제는 제시문에서 추출한 이론적인 틀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는 방법, 문제점을 분석해 해결하는 방안까지 함께 묻는다. 제시문 [다]에서 언급된 국사교과서 서술은 제시문 [가]의 '영속적 민족개념'을 전제한다. 민족의 객관적 실체가 전제돼야, 단군에서 한민족이 탄생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서술이 가능하다.
     이런 민족주의적 서술에 대해 제시문 [나]의 관점은 주관적인 필요에 의해 상상된 것이라 본다. 그 주관적 필요란 [나-2]에 나오듯이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공동체의 단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 상황이 유럽과 다르다. 식민지 시기에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제시문 [라]에 제시된 동일성이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초래한다는 관점은 민족에 대한 논의와 연결된다. 제시문 [라]에 나타난 차이에 대한 긍정은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극복할 방향을 암시한다. 차이에 대한 긍정이란 나와 다른 사상, 체제, 이념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 안의 타자들, 즉 혼혈인, 이주노동자 등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알려 준다. 제시문 [라]에서 주장하는 차이에 대한 긍정은 동일성을 지향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정적인 비교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두 상태가 만나고 섞여 생성되는 것이다.  <경남초암아카데미 제공>
     
     <제시문 원문>
     [가]
     나는 공자(孔子)∼석가(釋迦)·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숭배(崇拜)하였거니와, 그들이 합하여 세운 천당(天堂)·극락(極樂)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歷史)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命令)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服從)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 철학(哲學)도 변하고, 정치(政治)·경제(經濟)의 학설(學說)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인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겯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左右翼)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風波)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信仰)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興亡盛衰)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나는[生]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希望)이요, 이상(理想)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四海同胞)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最善)의 국가(國家)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文化)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民主主義)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 김구, <나의 소원〉
     
     [나-1]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 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의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르낭이 "민족의 본질은 모든 구성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모든 구성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라고 썼을 때 그는 그의 유쾌한 화법으로 이 '상상함'을 언급한 것이다. 겔너가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가 민족이 없는 곳에 민족을 발명해 낸다"라고 얼마간 잔인하게 규정했을 때도 위와 유사한 논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의 결점은 민족주의가 거짓된 구실 아래 가면을 쓰고 변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애쓴 나머지 '발명'을 '상상'이나 '창조'보다는 '허위날조'와 '거짓'에 동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민족에 대비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원시적 마을보다 큰 공동체는 (그리고 아마 이 마을조차도) 상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공동체들은 그것들의 거짓됨이나 참됨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상상하는 모양에 의해서 구별되어야 한다.
     -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나-2]
     민족주의가 탄생한 시기는 봉건적 신분제가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하던 때였다.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우리'라는 연대의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공동체의 단합 의식을 국왕에 대한 충성이나 자기가 살고 있는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서구의 예를 보면 여러 개의 조그만 나라로 찢어져 있었던 상황에서 단일한 강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민족주의가 발휘된다. 즉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니까 하나의 국가로 단결해야 한다'라는 논리가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된 것이다. 이렇게 대중에게 전파된 민족주의는 자발적인 국가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게 되고, 대중들은 자신들을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귀속된 구성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개인 스스로가 민족 공동체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민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민족주의를 뜻하는 Nationalism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민주의 등 여러 뜻으로 번역이 되는데 이것은 국가의 탄생과 민족주의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민족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은 서구의 민족국가(nation-state) 형성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가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역사는 민족주의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 준다. 국가의 상황에 따라 '민족'에 대한 요청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 진중권, <민족주의〉
     
     [다] 《국사》는 민족 대단결 혹은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현실의 적'을 '절대 악'으로 초역사화상상된 적한 뒤, '민족 절멸의 공포'를 조작하는 서사 기법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즉 《국사》는 특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때마다 '민족의 철천지원수' '절멸시켜야 할 적'의 존재를 명확히 설정한 뒤, 이런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복종, 화합과 단결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에서 돋보이는 '상상 속의 적'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이다. 일제와의 숭고한 투쟁을 통해서 민족사가 발전하고 대한민국이 수립될 수 있었다거나, 일제 때문에 근대화가 중단(지체)되고 민족 분단이 야기되었다는 식의 서술은, 조국과 민족의 대서사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이런 서사 기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국사》가 일본 제국주의를 어떻게 신화화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수하다. 《국사》는 '무자비' '잔인무도' '교활' '광분', 또는 '약탈' '강탈' '착취' 등의 용어를 내키는 대로 쓰면서 일제의 악마성민족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논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런 서술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제는 민족사 발전을 저해한 절대 악으로, 그리고 민족 대단결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민족사적 과제로 유추된다.
     - 지수걸, <'민족'과 '근대'의 이중주〉
     
     [라] 두 개 이상의 사상(事象)이나 사물(事物)을 서로 유사한 성질로 묶어 하나로 개념화할 때 동일성이 발생한다. 하나로 아우르는 순간 동일성은 타자를 설정한다. 세계는 동일성의 영토로 들어온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뉜다. 동일성은 자기 바깥의 것들을 모두 타자로 간주하고 이를 자신과 구분하고 대립시키면서 동일성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동일성은 타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의 담론을 형성한다.
     이와 달리, 두 개 이상의 사상이나 사물을 유사성을 떠나 변별 관계로 인식하면 다양한 차이들이 드러난다. 이를 1차적 차이와 2차적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1차적 차이는 개념의 틀을 통해 드러나는 외적이고 정적인 차이이다. 우리는 독일인과 프랑스인이 인류로서, 혹은 유럽인으로서 많은 공통점을 갖지만 민족성, 역사, 문화, 모습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계몽주의자들은 선진과 후진, 혹은 교양과 야만을 설정하여 차이를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누고 후자를 전자에 맞추려 한다. 이들을 극복하려는 자들은 이를 폭력이나 편견으로 간주하고 비판하며 우열관계를 넘어 '차이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나와 다른 것, 싫어하는 것, 열등하다고 생각하였던 것들을 차이로 인정하고 포용한다.
     2차적 차이는 유사성의 매개 없이 감성적인 층위에서 감각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개념적 차이로 동일성에 종속되지 않는 내적이고 경험적이며 역동적인 차이다. 2차적 차이를 지향하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1차적 차이는 동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차적 차이는 유사성, 대립, 유비(類比) 등의 매개에 의해 동일성으로 귀환하기 때문이다.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백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문화의 공유 등 서로 유사한 점에 따라 서양인이란 동일성으로 되돌아간다. 반면에 독일인과 프랑스인이 구체적인 경험과 감각을 통하여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를 긍정하고 상대방을 수용하면서 서로를 닮고자 한다면, 또 다른 차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어떤 유사성으로도 양자를 매개할 수 없는 차이다. 이것은 정적인 차이와 달리 역동적이며 동일성으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차이를 드러낸다. 이처럼 양자가 만나 서로 차이를 긍정하고 상대방을 수용하고 섞일 때 2차적 차이가 생성된다. 이 차이를 지향하는 자는 다른 것과 자신의 차이를 발견하고 수용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다. 이것이야말로 차이를 진정 긍정하는 것이고 차이를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차이의 눈으로 보면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도 무너진다. -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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