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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존엄한 죽음

“죽음을 맞는 일은 자신의 일 애착과 탐착, 원망을 놓아야”
강문성 교무(원불교 진주교당)

  • 기사입력 : 2008-06-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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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하게 죽어갈 권리를 달라는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생물학적 자연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죽음을 앞둔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해지는 의술이 환자에게 고통만 가중시키고, 지켜보는 가족들도 힘들기 때문에 마지막 이별을 존엄하고 품위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술을 통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입장도 있다. 어쨌든 죽고 사는 일이야말로 인간 대사(大事)이니, 최후를 맞는 본인에게나 보내드리는 가족들에게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 죽음에 대하여 ‘조만(早晩)이 따로 없지만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 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람이 열반에 들 즈음에 친근자로서 영혼을 존엄하게 보내드릴 때 취할 방법을 일러 주신 말씀이 원불교 교전 대종경 천도품에 있다.

    첫째는 병실에 가끔 향을 피우고, 실내를 깨끗이 할 것을 주문하셨는데, 이는 실내가 깨끗하지 못할 경우 병자의 정신 역시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병실을 조용히 유지케 하셨다. 병실이 조용하지 못하면 병자의 정신이 전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병자의 앞에서 좋은 사람들과 병자가 평소 마음을 잘 써서 잘되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병자 마음에 위안을 갖도록 하셨다. 이를 통해 그 좋은 생각이 병자의 정신에 인상되어 내생의 좋은 습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병자의 앞에서 악하고 간사한 말이나 음란하고 방탕한 이야기를 금하라 하셨다. 만일 그리하면 그 악한 형상이 병자의 정신에 인상되어 또한 내생의 나쁜 습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섯째는 병자의 앞에서는 집안 걱정이나 안타까움과 비통한 태도를 삼가라고 하셨다. 이로 인해 병자에게 애착이나 탐착이 생기게 하여 영혼이 떠나는데 어려움을 줄 수 있고, 그 착된 곳에서 인도 수생의 기회가 없을 때는 자연히 악도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병자의 앞에서 기회에 따라 염불도 하고 경도 보고 설법도 하고 선정에 들 것을 주문하셨다. 이로 인해 병자가 정신을 의지하여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일곱째는 병자가 열반이 임박하여 곧 호흡을 모을 때에는 절대로 울거나 몸을 흔들거나 부르는 등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떠나는 사람의 정신만 어지럽게 할 따름이요 아무 이익이 없는 것이니, 인정상 부득이 슬픔을 표현할 때에는 열반 후 몇 시간이 지나고 하게 하셨다.

    아무리 가족이 정성을 다해 보내드린다 해도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자신의 일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애착과 탐착을 놓으라 하였다. 그리고 평소에 원망한 일이 있거든 그 원망심까지 놓으라 했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놓지 못하면 내생의 악한 인과의 종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엄하고 바른 죽음을 화두로 삼고, 매일 밤 잠자는 그 편안한 시간을 곧 그 긴 여정의 연습 시간으로 삼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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