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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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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맛을 찾아 ⑧ 의령 신반장 메기국수

“할매, 얼큰한 욕 먹으러 또 왔어예~”

  • 기사입력 : 2008-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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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썩을 놈들, 또 왔나.”

    밥과 함께 욕을 퍼주는 식당들이 있다.

    일명 ‘욕쟁이 ○○집’으로 통하는 식당들인데, 이곳들은 대부분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첫 번째, 긴 세월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두 번째, 주인장은 무조건 ‘할매’다. 그리고 세 번째, 제대로 된 ‘맛’이 있다. 이 셋은 ‘욕’을 맛있게 처먹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 같은 거다.

    그중에서도 ‘맛’이 가장 중요한데, ‘욕’을 서비스로 손님들의 호기심을 끌려고 해도 음식 맛이 없으면 불쾌한 식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욕쟁이 할매‘들이 손님에게 막말을 하는 것 또한 기본적으로 맛에 자신이 있다는 일종의 ‘자부심’일 것이다.

    의령군 신반장(4,9일)에도 ‘할매의 욕’이 곁들여져 제 맛을 내는 메기 국수집이 있다.

    32년째 신반장을 지켜온 신반리 현동의 ‘합천식당’. 이곳에는 20대 후반부터 밥을 퍼 온 박순옥(60)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라 부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다.

    식당은 신반리 현동의 좁다란 골목 안에 자리했다. 소문 듣고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외진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할머니는 두 가지 반응으로 손님을 맞는다. ‘할매’를 외치며 들어서는 단골 손님들은 ‘XX놈, XX년’이란 애칭으로 반긴다. 식당에 메뉴판 하나 없어 초짜 손님이라면 심하게 무안할 정도다.

    “원래 우리집은 메뉴판 없다. 오는 놈들은 뭐 파는지 다 알고 온다 아이가.”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법. 초짜에게는 빠른 속도로 설명해 준다. 메뉴는 딱 세 가지. 메기탕, 추어탕, 대구뽈찜. 가격은 7000원, 6000원, 6000원.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메기탕인데, 말이 메기탕이지 메기국수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메기를 끓이고 양념한 탕에 국수를 넣는 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밥은 주문하는 사람에게만 내준다.

    2명이 메기국수를 주문하면, 할머니는 큰 고무통에서 팔딱팔딱 힘 좋은 메기 두 마리를 건져낸다. 메기는 2~3일에 한 번씩 현풍에서 가져온다. 마늘을 찧고, 양파와 파, 콩나물, 팽이버섯 등 야채를 썰어 넣는다.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육수도 따로 쓰지 않는다. 맹물에 다듬은 메기와 야채, 양념장을 넣는 게 전부다. 국수는 팔팔 끓인 후 다시 찬물을 한 번 부워 쫄깃하게 삶아낸다.

    이렇게 국물과 국수가 준비되면, 할머니는 ‘손님들과의 미팅’을 위해 노란 고무장갑을 준비한다. 냄비 안의 메기 뼈를 발라내기 위해서다. 그렇게 테이블에서 잠시 뼈를 바르는 시간에 할머니는 특유의 입담과 욕지거리로 손님의 식욕을 돋운다. 오늘은 초짜들을 위한 요리 설명의 장이 됐다.

    “뼈 바를 때 장갑 끼고 탕에 손 넣는다꼬 지랄하는 것들이 꼭 있거든. 그라면 나는 지보고 해보라 한다. 싫으면 저거가 하면 되지. 근데 이거 맨손으로는 뜨거워서 죽어도 못 한다. 장갑 껴도 얼매나 뜨거운데.”

    뼈를 모두 발라낸 할머니는 탕에서 꺼낸 메기 머리들을 각자의 앞 접시에 한 개씩 건져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국수를 넣는다. 얼큰한 국물에 휘휘 휘저어진 하얀 국수가 빠알갛게 색을 입는다.

    추어탕과 비슷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메기탕의 얼큰함과 국수의 쫄깃함이 어울려 깊은 맛이 난다. 담백하고 개운한 뒷맛 또한 별미다. 메기의 살점은 쫄깃한 살맛이 느껴지는 찰나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후후 불면서 국수 한 그릇을 비우니 땀이 뚝뚝 떨어진다.

    “고마 끓인 긴데 맛이 어떻노? 메기 힘이 워낙 좋아놔서 여름은 쉬이 날끼다.” 할머니가 냉커피를 들고 오며 하는 말이다.

    시원한 육수에 속도 든든하고, 쫄깃한 면발과 부드러운 메기살의 조화로 혀도 즐거웠다. 하지만 왠지 아쉬움이 드는 건 소문처럼 욕과 밥을 함께 먹지 못해서일까.

    할머니는 “다음에 또 놀러 오면 단골하자매. 그때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해 줄낀께 꼭 온나”며 싱긋 웃는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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