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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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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물이 주는 화두-이광익 교무(원불교 경남교구)

다원적 가치 인정않는 건 잘못
낮은 곳 향하는 물의 덕 배워야

  • 기사입력 : 2008-08-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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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선약수(上善若水)”(도덕경), 즉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노자께서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고 하셨다. 다툼 없이 낮은 곳에 처하는 물의 덕에 대한 말씀이라 생각한다.

    “공자재천상(孔子在川上) 수재수재(水哉水哉)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 원천곤곤(源泉滾滾) 주야불사(晝夜不舍)”(논어) 공자께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아, 물이여!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근원이 되는 샘물이 솟아 흐르니, 밤이건 낮이건 쉬지를 않네”라고 하셨다. 끊임이 없고, 변함이 없는 물의 덕에 대한 말씀이 아닌가 싶다.

    ‘수파(水波)의 비유’ ‘대승기신론’. 불교에서 많이 인용하는 물과 파도의 비유이다. 바람에 따라 파도가 일파만파로 갈라져도, 결국엔 똑같은 물이라는 것이다.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를 표현한 것으로, 물은 본체인 이(理), 파도는 현상인 사(事)에 비유된다. 즉 파도와 물은 서로 다르나 체성(體性)은 하나라는 상즉(相卽)의 원리로 설명되고 있다.

    “물은 세상 만물을 기르면서도 스스로 낮은 곳에 흘러간다. 물은 맑고 흐름을 두루 합하여 맑히며 여울지어 바다를 이룬다. 합치는 물의 덕, 국한 없는 물의 덕, 겸손한 물의 덕을 배우고 가르치라.”(‘원불교 성가’ 수덕회가 중)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1900~1962) 종사께서는 원불교 출가교역자 모임을 만들게 하고,‘수덕회(水德會)’라 이름하게 하셨다. 물의 덕을 배우고 실천하는 모임이 되라는 의미였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 또한 물에 관한 특별한 메타포를 생각하게 한다. ‘씻김’의 신성한 의식에 물이 사용되는 것은 물이 가진 정화(淨化)와 낮춤의 덕으로 인한 선택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물의 덕에 대한 성현들의 말씀을 나열해 보았다. 이는 ‘근원적인 것은 다르지 않다’는 그분들의 메시지를 물의 비유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성은 분명 성현들의 본의와 다른 것이다. 아전인수하며 싸우는 우리의 모습이 그분들의 뜻일 것인지, 물이 주는 화두를 가지고 생각해 볼 일이다.

    건강한 다원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를 넘어 지구공동체의 공생을 위한 기본적 장치다.

    사실 건강한 다원성은 진리의 모습과 다름이 아니다. 인간만이 자기중심적 사고로 다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나라 상황을 보며, 물이 주는 화두를 연마해 보길 모두에게 권해 드린다.

    이광익 교무(원불교 경남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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