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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논술 주제별 논술강좌] (21) 폭력과 평화

  • 기사입력 : 2008-09-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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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 없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논제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제시문 [가]: 프린스 드 발의 '내 안의 유인원' 중에서
     제시문 [나]: 인간 본성은 선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데 그 가능성이 실제로 드러나려면 습관적 실천에 의해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영어 제시문.
     제시문 [다]: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고 하나의 유기체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교과서 발췌문.
     제시문 [라]: 히틀러의 '나의 투쟁' 중에서.
     제시문 [마]: 이득재의 '폭력의 현대적 양상' 중에서
     
     문제1. [나]의 '사람은 도덕적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이미 도덕적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도덕적 행동을 실행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부합하도록 [가]의 내용을 한 단락으로 요약하시오.(400자 내외)
     문제2. [마]의 입장에서 [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쓰되, [라]를 예시로 활용하시오.(500자 내외)
     문제3. [가]∼[마]를 활용하여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는 것이 타당한지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700자 내외)

    ※제시문 원문은 뒤쪽에 실려있음.

     
     # 출제 의도

     굳이 사회적인 이슈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폭력은 인간 본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생활 속에 흔히 존재한다. 미운 사람을 때려 주는 상상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선생님과 어른들은 '사람들은 서로 다르므로 그 사람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관계를 맺으라'라고 훈계한다.

      하지만 '법보다 주먹'이고 '도덕보다는 하이킥'이 아닌가? 폭력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지만 악인을 응징하는 폭력에는 박수를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폭력에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 이에 '선의의 폭력' '정의의 힘'이란 이름으로 악인의 폭력과 구별한다.

     이번 논술문제는 '폭력'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논술고사의 기출문제로 국가폭력이나 사이버 폭력 등을 주제로 혹은 소재로 다룬 문제가 있었다. 이번 문제가 그동안의 기출문제와 다른 점은 좀 더 폭력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묻는다는 점이다. 폭력에 대한 인문적·철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레 겁먹지 마시길. '폭력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폭력에 이중적인 가치를 부여할까' 그리하여 '평화를 위한 폭력은 과연 옳은가' 등을 물어보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좀 쉽지 않을까?

     
     #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 우리는 흔히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행위를 짐승에 비유한다. 인간을 주체로 동물을 타자화한다는 문제제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폭력성을 모든 동물의 본성이라 일관되게 적용할 수 없음을 제시문 [가]는 말하고 있다. 특히 사람과 가까운 유인원 중에 침팬지와 보노보를 살펴봄으로써 인간이 '폭력적인 동물적 본성을 벗어나기 위해 고상하고 이타적인 도덕성을 사회화한다'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그 자체로 폭력과 평화의 양면적인 본성이 있음을 주장하려는 것이 이 제시문의 핵심내용이다.

     제시문 [나]= 인간 본성은 선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데 그 가능성이 실제로 드러나려면 습관적 실천에 의해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시문 [나]의 핵심내용이다.

     제시문 [다]= 교과서에서 발췌된 비교적 쉬운 제시문이다. 교과서에는 사회계약설과 대비해서 사회유기체설을 설명하고 있지만 논제의 성격상 제시문 [다]의 핵심내용은 제시문 [라]와 연관해서 사회 역시 진화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사람처럼 사회 역시 유기체로 존재하기에 그 구성원의 가장 큰 역할은 사회의 진화 내지는 진보에 두어야 함을 주장한다.

     제시문 [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시즘의 대표적인 예는 히틀러이다. 이 제시문 [라]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지탱했던 이론적 근거인 나치즘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제시문 [다]와 연관해서 이 제시문을 살펴볼 때 사회구성원의 가장 큰 역할이 사회의 진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사회구성원은 자신보다 열등한 것과 결합함으로써 우수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제시문 [마]= 이 제시문은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 기대 사회유기체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사회유기체설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건강하지 않은 부분은 치유하고 심지어는 도려내야 한다는 것을 정당화해야 한다. 흔한 표현 중 '사회의 암적 존재' 라는 말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는 이 말이 사실은 얼마나 무서운 표현인지를 이 짧은 지문은 말해 주고 있다.
     

     # 논술문 작성방향

     문제1. [나]의 밑줄 그은 문제제기에 부합하도록 [가]의 내용을 한 단락으로 요약하시오.

     사람(우리)은 도덕적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이미 도덕적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도덕적 행동을 실행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사람은 도덕적 성품을 갖고 태어나며, 그것은 도덕적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행동하면 도덕성을 갖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부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제시문 [가]를 요약하면 된다. 그러면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제시문 [가]를 요약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부합한다는 말에 강조점이 있다. 제시문 [가] 중 보노보를 빗대어 인간의 도덕적 성품을 설명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요약하면 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문장을 축약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쓰면 좋다.
     
     문제2. [마]의 입장에서 [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쓰되, [라]를 예시로 활용하시오.

     이번 문제는 자신의 입장이나 주장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요구하는 대로 써야 한다. 그러니 이 문제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잠시 접고 제시문 [마]의 주장이 어떤 내용인지 확실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또한 글이 짧으므로 주장하는 바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마]의 입장에 동조하든 그렇지 않든 제시문 [마]의 입장에 맞춰 제시문 [다]를 반박해야 한다. 또 글의 요소에서 제시문 [라]를 제시문 [마]의 주장이 옳음을 설득하는 예시로 활용해야 한다. 누구의 이론인지 주장인지는 일단 논외로 치자.

     그러면 [마]의 주장은 무엇인가? 앞의 제시문 분석에서도 살펴봤듯이 [다]의 주장, 즉 사회유기체설이 구조적인 폭력을 조장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주장이 은연중에 사람들의 생각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학교' '건강한 가정'이란 말을 한번이라도 써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서 좀 더 나은 글을 쓰는 키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만 폭력에 대한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글을 쓰면 된다. 그래서 예시로 활용할 제시문 [라]의 나치즘이 폭압적인 정치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다면 정말 좋지 아니한가.

     문제3. [가]∼[마]를 활용하여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는 것이 타당한지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시오.

     모든 제시문의 내용을 활용한다는 것은 제시문을 자신의 관점에 맞게 재배치하라는 것이다. 일단 대립되는 관점의 제시문을 살펴보고 이에 대해 자신의 관점대로 선택한 후 나머지 관점을 비판하면 된다. 그러면 나머지 제시문은? 당연히 활용해야 한다. 활용은 비판하거나 동조하는 것 모두를 말한다. 제시문 [가]와 [나]를 활용하여 자신이 선택한 관점 또는 주장을 뒷받침하라는 것이다.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한 타당한 관점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대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주장에 대해 비판과 동조만으로는 부족하다. '폭력 없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에 방점이 찍혔다기보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중점을 두고 답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폭력적 사회는 직접적 폭력보다 구조적으로 폭력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폭력에 비폭력적 방법이든 선택적 방법으로서의 폭력이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 된다. 이때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여러 예시와 이유를 찾아보면 만족스러운 논술문이 완성될 것이다.

     
     # 예시 개요

     개요짜기가 논술문을 쓰는 과정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아무리 개요짜기를 해 봐도 글이 늘지 않는 사람은 이 방법이 꼭 필요한가 하고 의심해 봐야 한다. 특히 머릿속에 나름의 좋은 글감이 떠오르지만 막상 개요를 짜고 나면 잘해야 평균적인 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개요짜기를 건너뛰어도 좋다.

     다만, 개요짜기에 버금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 쓰기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거칠게 한 번 쓰고 다시 그것을 정리하면 된다. 역개요짜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처음 쓴 것을 고쳐 쓰는 단계가 바로 개요짜기를 가름한다.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추어야 하는 1,200자 이상의 글이 아닌 600자 이하의 글은 두 번 쓰기가 개요짜기보다 더 유용할 수 있다.

     <문제 1- 한 단락 구성>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은 이기적 본성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가 이중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문제 2- 두 단락 구성>
     첫 단락 : 홀로코스트 등 국가에 의해 자행된 직접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사회를 유기체로 비유하는 생물학적이고 위생학적인 인식은 나치즘이다.

     둘째 단락 : 사회유기체설은 비유를 실제로 착각하여 그 적용에 있어서 폭력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단순한 이론이다.

     <문제 3- 두 단락 구성>
     첫 단락 : 어떤 사회이든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큰 부분은 인간이다. 하지만 사회가 인간일 수는 없다.

     둘째 단락 : 비폭력적인 방법은 폭력에 대항하는 방식으로는 비효율적이지만 폭력 없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정착하는 데 근본적인 해결방식이다.  (경남초암아카데미 제공)

    <사진설명= 폭력적 사회는 직접적 폭력보다 구조적으로 폭력이 재생산되기 때문에, 폭력 없는 사회에 대한 타당한 관점을 찾기 위해선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진은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Holocaust)’ 희생자를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연합뉴스>


     
     <제시문 원문>

     [가] 보스니아와 르완다 등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할 때처럼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를 때, 우리는 그들을 짐승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거나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같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그러한 행동이 인간의 고상한 도덕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듯 악마와 천사 사이에 머물고 있는 인간 본성의 이중성이라는 주제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두 친척 동물인 침팬지와 보노보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침팬지는 폭력적이고 권력에 굶주린 동물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반면, 영장류 세계의 히피족이라 할 수 있는 보노보는 '전쟁이 아니라 섹스'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유인원은 인간과의 유전적 거리가 거의 같지만, 지금까지 언론 매체나 문헌에서는 우리와 침팬지를 비교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노보의 생활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노보 사회가 보여 주는 암컷의 지배, 협력적인 성격,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섹스의 사용 등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이론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간의 공격성을 발전과 동일시하고, 우리의 친척인 침팬지의 행동에서 폭력성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따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만 한다는 이미지를 널리 유행시켰다. 이 메시지는 레이건과 대처가 미국과 영국을 통치하던 시절, 탐욕을 자유 시장제도의 기초로 여기던 시대정신과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엔론 사태와 그 밖의 기업들의 부정 사례가 터지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도덕적 책임과 공동체를 점점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생물학계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의 기조는 강자의 권리에서 도덕성과 책임감의 진화 쪽으로 급격히 쏠려 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조상에 관해 보다 완전한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적절한 때로 보인다. 이 그림은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를 우리의 본성으로 수용하려 한다.
     ― 《내 안의 유인원》, 프린스 드 발
     
     [나] As to goodness of character in general, Aristotle says that we start by having a capacity for it, but that is has to be developed by practice. How is it developed? By doing virtuous acts. At first sight this looks like a vicious circle. Aristotle tells us that we become virtuous by doing virtuous acts, but how we can we do virtuous acts unless we are already virtuous? Aristotle answer that we begin by doing acts which are objectively virtuous, without having a reflex knowledge of the acts and a deliberate choice of the acts's good, a choice resulting from an habitual disposition.
     For instance, a child may be told by its parents not to lie. It obeys without realizing perhaps the inherent goodness of telling the truth, and without having yet formed a habit of telling the truth : but the acts of truth-telling gradually form the habit, and as the process of education goes on, the child comes to realize that truth-telling is right in itself, and to choose to tell the truth for his own sake, as being the right thing to do. It is then virtuous in this respect.
     (disposition : 성격, 기질. virtuous : 선한. vicious : 악한. reflex : 반사, 반성. deliberate : 신중한.)


     제시문 다 변역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일반적인 품성이 착하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출발하되, 그 가능성은 습관적 실천에 의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가능성을 어떻게 개발시킨단 말인가? 도덕적 행동의 실천에 의해서다. 언뜻 보면 이 말은 악순환의 반복 논리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사람은 도덕적 행동을 실천함으로써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이미 도덕적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도덕적 행동을 실행할 수 있겠는가? 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동에 대한 성찰 없이 그리고 좋은 행동에 대한 섬세한 선택 없이 그리고 습관적인 기질에서 나오는 선택 없이, 객관적으로 옳아 보이는 일을 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에게 부모들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해 줄 수 있다. 아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본래 선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또 진실을 말하는 습관이 아직 붙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종한다. 그러나 아이는 진실을 말하는 행위가 점차 습관이 되고, 교육과정을 계속 밟아감에 따라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옳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이것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진실을 말하기로 마음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이의 도덕적 성품이 이루어진다.
     
     [다] 스펜서는 그의 저서 《사회정학》에서 "사회는 개인과 완벽하게 같은 체계로 조직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 사이에 유추 이상의 어떤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생명에 대한 똑같은 규정이 양자에 적용된다"며 사회를 진화의 원리와 사회 유기체론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진화의 원리가 우주의 근본 원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회를 생물 유기체에 비유하여 양자를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 이러한 사회 유기체설에 기초하여 스펜서는 사회가 단순사회에서 다양한 수준의 복잡사회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며, 결국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고 하나의 유기체로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 《사회·문화》, 천재교육
     
     [라] 아주 똑같지 않은 두 생물이 교배하면 언제나 양자의 중간 정도의 것이 탄생하며, 그 혼합종은 낮은 쪽 어버이보다는 우수하나 높은 쪽 어버이보다는 열등하다. 따라서, 이런 결합들은 머지않아 높은 쪽과의 투쟁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다. … 열등한 것과 결합함으로써 우수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 히틀러, 《나의 투쟁》
     
     [마] 아렌트가 "유기체적인 비유들은 단지 폭력을 조장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듯이 '건강한 사회'라는 수사학적인 비유는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아렌트가 말하듯이 권력과 폭력을 생물학적인 개념들로 해석하는 유기체적인 사유는 정치문제에서 위험한 것인데도, 학교는 여전히 지·덕·체를 강조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을 통해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 생물학적이고 위생학적인 비유가 통용되고 있다.
     ― 이득재, <폭력의 현대적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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