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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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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배우기와 터득하기 - 장성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08-09-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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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초기 학자 강희맹이 자식을 훈계하기 위해 쓴 글 중에 ‘도자설’이 있다.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는 이야기이다. 도둑질을 가업으로 삼는 부자가 살았는데, 아비가 자식에게 기술을 다 전수해 주었더니 얼마 되지 않아 실력이 출중해진 자식이 자만심을 가지고 서열 조정을 요구하였다. 그날 밤 부유한 집에 침입하여 공동 작업을 하던 도중에 아비가 몰래 밖으로 나와 창고 문을 채우고 귀가해 버렸다.

    낭패를 당한 아들은 고민 끝에 기지를 발휘하여 쥐 소리를 내어 주인을 깨우고, 창고 문을 여는 순간 뛰쳐나와, 몇 차례 위기를 넘기고 겨우 돌아왔다. 아비의 비정함을 원망하자 아비는 태연히 답하였다. 내가 너를 창고에 가두지 않았더라면 네가 어떻게 창고 문을 열게 하고, 주인집 사람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올 수 있었겠느냐고. 모름지기 앎이란 배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 완성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덧붙이기를, 천하고 나쁜 도둑질도 자득을 하고 나서야 제대로 되거늘, 하물며 인의에 뜻을 둔 선비가 성리에 잠심하여 지혜를 스스로 깨쳐 실천하기에 전심전력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요즈음 정보 공개법 시행을 앞두고 중앙 언론매체들이 앞다투어 각급 학교의 성과를 수치로 내보이고 있다. 특히 대학을 대상으로 한 자료에서는 운영 실태, 취업률, 희망 직업군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 최대의 관심사는 단연 취업 문제이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대학의 소재지, 규모와 분야, 설립 근거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 대학의 경우 대개 취업률이 높게는 70% 정도에서 낮게는 50%에 미달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과 졸업생, 재학생, 가족들에게는 절박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게 한다.

    또 어떤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서 준비하는 외국어, 자격증, 입사시험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전공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여기에 소요되는 학원비 등 경비도 월 17만원을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공 공부와 취업 공부를 자른 듯이 나눌 수 없고, 취업 준비를 위한 돈의 지출도 자기 개발 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에너지와 경제적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매달린다.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가 대부분 미래의 직업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 노동이다 보니 학업에 지장이 크다.

    인구 구조 때문에 청년 실업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산업 구조와 자동화로 인해 취업 기회가 적어지는 것은 오늘날 피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일의 효율성과 인력의 개발을 위해 학교와 사회가 함께 노력하면 훨씬 나아질 수는 있다. 가령 선진국의 예에서 보는 체험 수업과 인턴 과정의 확대 같은 방안이 그것이다.

    학생들이 재학 기간 중 다양한 분야의 실습에 참여하여 적성을 발견하는 한편 사회와 기업의 실체에 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따라하기만 하거나 자질구레한 잡무를 대신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기관의 선택과 진입 과정을 꼼꼼하게 통과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졸업 후에도 폭넓은 인턴 과정을 설정하여 전문인으로서의 실무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물론 오늘날 이공계 전공자들에게는 이런 과정이 상당히 확보되어 있지만, 인문 사회 영역에서는 지극히 제한적이므로 대폭 확대 심화시켜 볼 만하다.

    이를 위해서 기업이나 사회 기관들도 단순히 기회 제공이라는 시혜 의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많은 인적 자원 중에서 필요한 만큼 선발하여 채용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미래의 일꾼들을 키우고 그러한 사람들의 소중한 업무 능력을 활용한다는 태도가 절실하다.

    학교 수업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에 치중하는 과정이라면, 실습은 이것을 심화시키는 자득의 과정이 된다. 이 관계가 잘 이루어지면 취업 준비를 위해 지출되는 시간과 경비, 번민과 갈등의 에너지가 절약될 것이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한정 늘어나는 양육기간에서 벗어나 당당한 사회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금요칼럼

    장 성 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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