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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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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바다를 보러 가자 - 김이삭 (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08-10-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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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 바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이다. 골수암과 뇌종양으로 시한부 생을 선고받은 두 남자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다를 찾아 나서는 감동적인 로드 무비다. 죽음이 멀지 않은 그들에게 ‘바다’는 지상에서 가볼 수 있는 마지막 ‘낙원’이 아니었을까.

    바다를 한 번도 못 봤어?

    응, 단 한 번도.

    우리는 지금 천국의 문 앞에서 술을 마시는 거야. 세상과 작별할 순간이 다가오는데도 그런 걸 못 봤단 말이야?

    정말이야, 못 봤어.

    그럼, 천국에 대해 들어봤어?

    천국은 얘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라는 마틴의 말이 이어지지만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루디는 이해하지 못한다. 마침내 마틴은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루디를 위해 제안한다.

    “바다를 보러 가자!”

    며칠 전, 칠천도를 다녀왔다. 삼촌의 뜻밖의 죽음으로 찾은 바다였지만, 바다는 여전히 상처 입은 나의 지친 영혼을 말없이 품어주었다. 늘 바다를 안고 살았다. 바다는 나의 친구이자 나 자체인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나의 놀이터는 물이 빠진 개펄이었다. 하루 종일 기어 다니는 게를 잡기 위해 뛰어다녔다. 특히 ‘쏙 잡기’ 놀이를 좋아했다. 개펄에 구멍이 송송 나 있는 곳을 찾아 강아지풀을 넣으면서 아래 위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면 쏙이 강아지풀을 물고 따라 올라오곤 했다. 바다에 서면 늘 풍요로운 행복을 느낀다. 바다는 하나님이 내린 선물임에 틀림없다. 바다는 늘 내게 말한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라고.

    ‘자연에 따라 조화롭게 사는 것’ 요즈음 내가 고민하고 좋아하는 말이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이것은?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섭리 아래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에 따라 순응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척도가 아닐까.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였나요?” 누군가 질문을 해오면 어린 시절, 이라고 말하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진해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다. 한 달 후 전근 가신 선생님에게서 편지가 왔다. 우리 반과 선생님이 맡은 진해 초등학교 3학년 1반 아이들이 같은 번호끼리 편지를 주고받자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와우!’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곤 편지 쓰고 싶은 아이들만 같은 번호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3학년 내내 전해졌다. 다음 해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그 반 친구들이 우리 반 아이 5명을 초대했다. 참 좋았던 추억이다. 초대해 준 그 친구들 또한 여름방학에는 칠천도에 오게 되었다. 진해에서도 바다를 보았을 텐데 친구들은 “와아!” 탄성을 지르며 바다 품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깜깜한 밤 모두 선창가에 앉아 두 발을 바다에 적셨다. 달빛을 받은 플랑크톤이 빛을 내어 반짝였다. “와아!” 우린 또 한 번의 함성을 지르며 까르르 웃었다. 우리들의 바다, 그 바다를 친구들은 나처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까.

    많은 시인들이 바다에 대한 이미지 시(詩)를 쓰고 있다. 바슐라르의 말을 빌리자면 물은 <자연 designtimesp=27930>의 나체, 깨끗함을 지닐 수 있는 나체를 연상시킨다. 상상력의 영역에 있어서는 양털을 입지 않은 진정으로 벌거벗은 존재는 언제나 대양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물에서 나타나는 존재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물질화해 가는 반영으로서, 어떤 존재가 되기 전의 이미지, 어떤 이미지가 되기 전의 욕망인 것이다.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짜디짠 바다에서 물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투구게처럼 지금까지도 바다에 머물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는가 하면 뭍 위를 돌아다니거나 뭍 위로 날아다니는 생명체들도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어딜 가든지, 몸속에 바다를 품고 다닌다. 우리의 몸은 언제나 바다를 기억한다. 많은 시인들이 바다를 노래했다. 오늘도 나, 바다가 들려주는 詩 듣기 위해 바다에 간다. 밤새 나를 위해 달려와 줄 파도소리를 베개 삼아 눕고 싶다. 바다를 보러 간 영화 속 마틴과 루디는 과연 천국에 도착했을까.

    작가칼럼

    김이삭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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