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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람사르총회와 시 - (시인. 계간 ‘시인시각’ 주간)

  • 기사입력 : 2008-10-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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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는 지금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람사르총회(10. 28~11. 4)가 열리고 있다. 공식 명칭은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 일명 ‘환경올림픽’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1997년 가입 이후 2008년 1월 현재 우포늪 등 8개의 습지가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다.

    21세기는 녹색 시대다.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문명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는 공장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화가 주도권을 가지고 시대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친 자연’의 문패를 붙인 녹색 개념이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른바 녹색경영, 녹색성장 등과 같은 말들이다.

    이렇게 의식이 변화된 것은 지구온난화로 몸살 앓는 지구의 건강을 되찾고 후손에게 온전하게 삶의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탄소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대운하를 종교적 신념처럼 신봉하던 대통령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할 정도이니, 녹색성장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람사르총회를 계기로 국토의 가슴과 복부를 절개해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반생명적 논란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녹색성장의 핵심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방안을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찾는 것이다. 녹색성장이라는 거대 담론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린 IT(정보기술)산업 개념과 더불어 습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생태학적 상상력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왜 습지가 녹색성장의 실마리이며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일까? 단적인 예지만 습지에는 이탄층이 발달되어 있다. 이탄층은 습지식물이 죽은 뒤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이루어진 층. 이 이탄층에 기후변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탄층은 탄소 저장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습지는 대기의 온도와 습도 조절 기능이 뛰어나고 자정 능력이 탁월하다. 숲이 자연의 허파라면 습지는 자연의 신장이라 불리는 연유다. 그리고 습지는 조류, 어류, 포유류 등의 먹이그물이 잘 형성되어 있어 생물종의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생명의 모태이다. 달리 말하면 생태계의 고문서(古文書)가 잘 보존되어 있는 생생력(生生力)의 현장이다. 생명의 모태, 이 생태계의 고문서를 가장 잘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다.

    문학, 그 가운데서도 시는 인간의 정신적 깊이와 넓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장르다. 특히 유기체와 유기체의 관계, 유기체와 유기체를 둘러싼 바깥 세계와의 관계를 시적 상상력으로 해석하고 확장하는 생태시는 나와 타자와 자연과의 관계가 조화와 균형의 질서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체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사고로 자행한 광범위한 자연 파괴에 대한 은유적 비판이며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간절한 염원의 반영이다.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즉 람사르협약의 근간도 이와 같을 것이다.

    람사르총회를 계기로 습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지만, 공식 행사에 생태학적 사유의 결정체인 시가 배제되고 있다. 이는 주최 당국의 문화적 시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람사르총회 방문자들의 공식 탐방 습지인 우포늪 등을 형상화한 생태시를 모아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해 그들에게 들려주고, 그러한 번역 시집을 공식 자료로 활용해야 했다. 시는 우리의 정신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며 생태적 의식을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시집은 영구히 남는다. 세계 160여 나라에서 방문한 2000여 명의 환경 관련자가 자국으로 가져가 한국의 생태적 정신사를 연구할 때 귀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료이고, 평생 소장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바로 영역 시집 발간 등이 이루어져 문화국가로서의 위상을 보여 주어야 한다.

    배 한 봉

    시인 계간 ‘시인시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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