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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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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경의 NIE] (71) 1998년과 2008년 히트곡 노랫말로 본 가치관 변화

‘우리’ 아닌 ‘나’만을 위한 삶을 노래한다면…

  • 기사입력 : 2008-11-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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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유행하는 노래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여러분들은 너무 잘 알고, 쉽게 따라 부르는데, 글쎄요. 저는 이젠 구세대인가 봐요. 너무 빨리 유행하는 곡이 바뀌니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숨이 차서 유행의 흐름을 놓쳐 버려요. 반복되는 후렴구, 직설적인 가사, 빠른 리듬 뭐, 이런 점들이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10년 전인 1998년과 2008년의 히트곡을 통해 여러분들의 정서와 이전 세대의 정서를 한번 비교해 볼까 해요. 10대들에게 주목 받는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은 그 세대의 가치관과 욕망을 반영한다고 해요. 10년 전의 10대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생각했고, 요즘 10대들은 무엇을 고민할까요?

    10년 전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에는 ‘소망, 영원, 꿈, 약속’ 등의 단어가 많이 들어갔어요. 핑클과 S.E.S는 대표적인 여성 아이돌 그룹이었는데, 이들이 부른 노래의 가사(너에겐 그 어떤 말보다 넌 내 꺼라는 말이 듣고 싶어)에선 나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해요.

    하지만 요즘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은, 동방신기의 ‘주문’(넌 내게 미쳐/ 넌 나의 노예)처럼 ‘노예’라는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독점적인 소유물로 표현해요.

    그리고 연인과의 정신적인 사랑보다는 육체적인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고 있기도 해요. 그룹 2PM의 ‘10점 만점에 10점’(그녀의 입술은 맛있어 입술은 맛있어/10점 만점에 10점/그녀의 다리는 멋져 다리는 멋져/ 10점 만점에 10점)은 여성의 신체 부위에 점수를 매기기도 하네요. 외모지상주의 문화가 노랫말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요. 또한 사랑이라는 서정적 의미보다는 육체적 의미의 감각적인 사랑을 더 추구하는 10대들의 문화가 보이기도 하네요.

    두 번째 특징은 10년 전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의 경우 겸손과 자기 희생의 정서가 강했다면 요즘에는 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1998년 디바의 ‘왜 불러’(왜 불러 날 잡은 건 너의 실수야/나보다 좋은 여잔 얼마든지 있는데)와 반대로 올해 발표된 태양의 ‘죄인’(내가 잘못되면 너 때문인지 알아/ 날 망치게 한 모든 원인은 너니까/다른 사람을 만나 불행해주겠니/ 기도해 줄 테니)에서는 이별의 원인을 상대로 돌리는 것을 넘어 타인의 불행을 빌기도 해요. 또한 1998년 젝스키스의 ‘너를 보내며’(내가 아닌 다른 삶과 함께 있는 걸 봤어/ 모든 걸 이제 단념해야겠어/ 이제 사랑했던 널 위해 먼저 떠날게)에서는 상대방을 위해 떠나겠다고 하는 데 반해, 태양의 ‘나만 바라봐’(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 마)는 내가 바람을 피워도 상대는 그래선 안 된다는 이기적인 노랫말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지난 세대 입장에서 볼 때 희생도 문제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문화가 약간은 보여요.

    세 번째 특징으로는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아이돌 그룹은 이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으로 가사 내용이 개인적인 감정 묘사에서 벗어나 사회 비판적인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어요.

    H.O.T의 데뷔곡은 학교폭력을 다룬 ‘전사의 후예’였고, 젝스키스도 한국교육 현실을 비판한 ‘학원별곡’이었으니까요.

    H.O.T의 ‘빛’(앞으로 열릴 당신의 날들을 환하게 비쳐 줄 수 있는 빛이 되고 싶어/ 이제 고개를 들어요 눈부신 빛을 바라봐요)은 실패를 딛고 희망과 구원을 노래했어요.

    반면에 요즘 노래는 자기 만족과 주로 연애로 마무리를 해요. 자아도취의 대표적인 예가 원더걸스의 ‘소 핫’(섹시한 내 눈은 고소영/ 아름다운 내 다리는 좀 하지원/ 어쩌면 좋아 모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이죠. 가사를 들으면서 웃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모로 말고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요즘 여러분들의 모습이 슬프다는 생각도 했어요. 성적, 학교, 취업이니 하면서 강요된 경쟁만을 위해 앞으로 달려오는 우리 사회의 자아상은 아닌가 하고 말이에요.

    이런 문화가 10대들만의 특징이 아닌 것 같아요. 20·30세대를 중심으로 블루슈머(Bluesumer)라는 소비주체가 뜨고 있대요. 블루슈머는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의미하는 블루오션(Blue Ocea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경쟁자 없는 새로운 소비자를 뜻하는 신조어예요.

    이들은 자신이 먹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여행, 레저 활동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요. 나를 위한 소비를 열심히 하는 새로운 소비주체로 요즘 불황인 경제에 이들을 잡기 위한 마케팅과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나를 위한’ 시리즈는 또 있어요. 신문을 보면 경제 위기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위기를 ‘나를 위한 경제’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개인들은 선물 매도(주식의 가격을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것)로 주가하락 때 선물매도 계약을 하면 현재 가격에 미리 팔고 난 뒤 나중에 떨어진 값으로 되사면 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하락하는 것에 베팅을 하고 있고, 은행들은 쓰러져 가는 기업들에게 대출을 오히려 받아 냄으로써 비오는 날 남의 우산을 빼앗아 비를 피하려 하고 있고, 대기업들은 환율이 오르는 것을 보고 달러를 사들여 환율 상승과 원화 가치를 낮추고 있어요.

    자기 이익에만 매달려 전체가 손해를 보는, 결국 그 손해가 나에게도 오리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야!”

    오늘날 일어난 경제 위기는 바로 땀, 사람의 노동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해요. 2008년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도 바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어요. 너가 아닌 나, 우리가 아닌 나만을 위한 삶을 지난 10년간 살아왔기 때문은 아닐까요?

    유혜경(부산·경남 NIE 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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