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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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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9) 반일사관의 그림자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일제가 남겨놓은 그릇된 역사관

  • 기사입력 : 2008-1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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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지배 정당화 논리부터 깨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관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반일사관’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반일사관은 단순한 피해의식을 넘어 역사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필자는 반일사관의 역사적 근거를 따지기 위해 펜을 든 것은 아니다. 반일사관 이면에 감춰져 있는 우리의 기이하고 모순된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진정으로 일본의 잔재를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기 위해서다.

    1948년 8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경무대에 입성했다. 그가 경무대에 입성한 뒤 제일 먼저 한 것은 ‘콘센트 때려 부수기’였다. 전기 콘센트가 일본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기분 나쁘다며 ‘망치로 콘센트를 다 부수어라’고 지시한 것이다. 곧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다 부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전면에 기용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주요 요직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의해 지배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 특히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인식한다. 이는 조선의 붕당정치를 비판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인들은 세 놈만 모이면 싸운다’는 출처불명의 속담도 만들어 내었다.

    또 우리의 역사는 외부의 이식에 의해서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중국의 문물 전래를 떠올리면서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역사를 이끌어가기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일제 강점기 시절의 근대적 경험이 바로 한국의 경제성장과 근대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우리 역사는 큰 발전 없이 정체된 상태로 이뤄졌다는 생각도 있다. 비슷비슷한 역사가 삼국시대니, 고려시대니, 조선시대니 이름만 달라져 그대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우리 한국인이라면 한 가지씩은 가질 법한 일반적인 ‘상식’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모두 일제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논리들이다.

    국가를 역사의 최선봉에 놓고, 국가에 대한 공헌을 개인을 평가하는 데 최우선의 가치로 놓는 우리의 생각은 전형적인 일제 전체주의의 역사관이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절대적인 희생을 근간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개인의 희생을 유도하기 위해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노력했다는 인물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국가를 위해서 일했으니 어떤 다른 평가도 불가하다. 이런 전체주의 사고는 일제가 물러간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은 용서 못하지만, 일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 반민족 행위자들은 ‘국가에 공을 세웠다’는 막연한 이유로 용서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는 사실 역시 일제가 남겨놓은 유산이다. 일제는 조선의 침략을 미화하기 위해서 ‘조선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 무너지고 있었다’고 강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일제가 주목한 것이 조선의 붕당정치이다. 얼핏 그것은 끝없는 정치게임처럼 느껴지기 쉽다. 일제는 이를 더욱 확대하여 ‘당파성론’이라는 논리를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조선의 붕당정치가 조선의 멸망을 이끌었다는 오명을 쓰기에는 무리다. 조선의 붕당정치는 당시 봉건사회로서는 가장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이었다. 붕당이란 요즘의 여당과 야당과 같이 여러 사안에 각기 다른 생각과 대안들을 내세우면서 치열한 논리다툼을 통해서 더 합리적인 국가운영을 꾀하려는 노력이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른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역사를 발전시켰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문제는 이 생각들의 이면에 ‘중국이 없었으면, 역사발전이 후퇴했을 것이다’는 막연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또한 일제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역사인식이다. 이를 ‘타율성론’이라고 한다. 일제는 타율성론을 주입하고, 타율성론의 연장선에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논리를 개발했다.

    모든 나라와 민족은 서로 문물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중국이 우리에게 준 것도 있지만, 우리가 중국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또한 우리에게 전해진 중국 문물도 또 다른 곳에서 중국으로 이식된 것이다. 어떤 문물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든 것보다는 받아들여서 어떻게 재창조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역사가 큰 변화 없이 정체되었다는 생각도 일제가 만들어낸 논리이다. 사실 근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대나 중세의 역사는 겉모습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역사를 살펴도 마찬가지다. 신분제에다가, 왕이나 군주가 다스리며, 농사짓기가 거의 유일한 생산수단임은 변함이 없다.

    일제는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우리에게 ‘한국 역사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네’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일제가 등장함으로 인해서 공장이 생겨나고, 도로가 닦이고, 서구식 삶을 사는 등 ‘한국 역사가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결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반일사관을 외치는 우리는 기실 일제가 남겨놓은 역사적 사고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일을 죽어라 외치고, 일장기를 아무리 태워도 우리는 여전히 일제 강점기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을 욕하면 정상이지만, 일제가 남겨놓은 논리를 비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오늘날 ‘반일국가’ 대한민국의 참모습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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