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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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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곶감 마을로 떠나는 달콤한 여행

★함안 파수리 미산마을
감나무에 남긴 까치밥 정겨운 추억 선물

  • 기사입력 : 2008-12-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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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 파수곶감



    함안 파수리 미산마을 주민들이 작업장에서 곶감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함안군 여항산 자락에 자리 잡은 파수리 미산마을.

    조선 중엽부터 왕실의 진상품으로 오를 만큼 그 맛이 뛰어난 ‘함안 파수곶감’을 찾아 길을 나섰다. 곶감으로 유명한 ‘파수리’는 미산마을과 원촌마을, 상파마을, 하파마을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은진임씨(恩津林氏) 집성촌인 미산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이곳이 ‘원조 파수곶감’ 마을임을 알리는 안내 간판이 걸려 있다.

    수확을 끝낸 감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하늘 끝에 걸린 빨간 홍시는 정겨운 시골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감은 주인이 게을러 수확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지만 이것은 하찮은 미물까지도 생각하는 우리네의 속깊은 정서가 묻어나는 ‘까치밥’이다. 자식들의 배를 채우기에도 급급해던 어려운 시절에도 야생동물을 생각하는 너그러움과 배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옛 시절로 돌아가 새로운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한다.

    집집마다 주홍색으로 물들어 가는 곶감이 줄줄이 매달린 풍경은 풍성한 가을을 수확한 농부들의 넉넉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마을 안 작업장에서는 막바지 곶감 만들기 작업이 한창이다. 미산마을 임영일 이장의 안내로 파수곶감의 유래와 고유의 맛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임 이장은 “10월 초순부터 말까지 감 수확을 한 후 11월 초부터는 곶감을 만들기 위한 감 깎기 작업에 들어가는데, 파수곶감 맛의 비결은 밤낮의 기온차와 여항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있다”고 한다. 밤낮의 기온차가 평균 10℃(0℃~13℃) 이상을 보이면서 곶감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단맛을 더해간다.

    또한 파수곶감은 자연 건조 방식으로 훈증기 등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바람으로 만들어진다. 햇빛에 직접 말리면 겉은 마르지만 속은 마르지 않아 상하기 쉽고 주름이 굵게 생겨 보기에도 좋지 않아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함안 파수곶감은 씨가 없고 완건시가 된 후에도 말랑말랑해 더운 물에 넣으면 꿀처럼 풀리는 특징을 갖고 있어 한방약의 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그는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잘랐을 때 겉과 속의 색깔이 비슷해야 좋은 곶감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작업장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새벽부터 시작된 감 깎기는 저녁 늦게까지 진행되는데 보통 12시간 정도 일하면 50접(5000개) 이상을 깎아 낸다”며 “요즘은 감 깎는 전용기계(박피기)로 일을 하지만 예전 손으로 깎던 시절에는 숙달된 사람도 하루 10접(1000개) 이상 깎기가 힘들었다고 한다”고 말한다.

    미산마을은 38가구 중 1~2가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곶감을 생산하고 있다.

    호랑이는 산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곶감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감 잡은 사람들은 산을 지날 때면 맛있는 곶감으로 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곶감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파수곶감엔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파수리는 여항산을 배경으로 예부터 성산이씨, 남양홍씨, 은진임씨의 세 대성들이 살았는데, 임씨 문중의 문장 어른이 큰 병에 걸려 온갖 명약과 명의를 불러 치료했으나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여항산을 헤매며 좋다는 약초를 구해 병 구완을 하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산을 헤매던 아들이 그만 실족해 정신을 잃었는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나타나 ‘이놈, 애비가 병중에 있거늘 약 한 뿌리도 캐지 못하고 누워 있다니 썩 일어나지 못할까’라며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란 아들이 ‘가친이 와병 중에 신음하고 있으나 소자가 불효하여 완쾌할 길을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하니 노인은 지팡이로 가리키며 ‘저기 붉은 열매를 깎아 말린 후 따뜻한 물에 녹여 너의 애비에게 먹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 열매를 딴 아들은 그 열매를 정성껏 깎아 말린 후 물에 녹여 먹였더니 부친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약재로 쓰다 남은 붉은 열매를 심었더니 이듬해 봄에 싹이 트고 몇 해 후 열매를 맺었단다. 그 붉은 과일나무가 지금의 감나무이며 그 열매를 깎아 말린 것이 지금의 곶감 시초였다고 말한다.


    주민이 곶감을 말리고 있다.

    함안 파수곶감은 45~60일 자연 건조시키고 1주일가량 숙성시킨 ‘완건시’를 상품으로 출하하는데 반건시(40일 자연 건조, 2~3일 숙성)에 비해 훨씬 당도가 높고 입 안에서 녹는 맛이 부드럽다.

    임 이장은 “경북 상주곶감이 유명해 맛을 보니 파수곶감에 비해 훨씬 당도가 떨어졌다”며 “다만 파수곶감이 4개 마을에서 400~500동(1동 100접- 1만개) 정도의 생산에 그치는 반면 상주곶감은 100가구에서 가구당 100동 정도를 생산할 정도로 대량으로 출하해 4계절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고 말한다.

    건조장에 널린 곶감을 하나 먹어보니 그 맛이 예술이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짝지근한 맛이 한마디로 끝내준다. 그래서 ‘호랑이가 와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곶감을 준다는 말에 울음을 그쳤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본초비요’에서는 곶감이 비(脾)를 강하게 하고 폐를 윤하게 하여 기침을 그치게 하고 숙혈(宿血)을 없앤다고 전한다. 오는 중순쯤이면 촉촉하고 달콤한 함안 파수곶감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청곶감= 산청곶감은 지리산 ‘덕산곶감’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덕산은 산청군 삼장면과 시천면을 통칭하는 지명으로 삼장·시천 양면에서 생산된 곶감이 시천면 사리 덕산장에서 거래되어 ‘덕산곶감’으로 유명해졌다.

    산청곶감은 타 지역 곶감과 비교해 원료부터 다르다. 산청곶감은 이 지역에서만 재배되는 고종시와 단성시를 원료로 만든다. 이는 장동시와 더불어 산청이 원산지로서 이 지역에서 전래되는 유명한 토산 감품종이다. 또한 지리산의 특별한 자연환경은 육질뿐 아니라 천연 당도를 높이고 색택을 빼어나게 한다. 더불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빼어난 솜씨를 지닌 곶감 장인들이 몇 백년의 세월을 이어가며 ‘산청곶감’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하동곶감= 하동 악양, 횡천, 청암, 옥종에서 생산되는 ‘하동곶감’은 품질이 우수한 대봉감과 고종시를 원료로 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곶감을 건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밤낮의 온도차가 커 당도가 높고 비타민 손실이 적어 우수한 품질의 곶감이 생산되고 있다.

    현재 538가구에서 연간 660t(110억원)을 생산하고 있다. 대봉 곶감은 3만5000원~4만5000원, 일반 곶감은 2만5000원~3만5000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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