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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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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감(堪)·인(忍)·대(待)

원정 스님 (창원 성주사 주지)

  • 기사입력 : 2009-01-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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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이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덕담을 한다. 희망을 안고 새롭게 맞이하는 새해를 우리 선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되 삼가 조심스러이 하라’는 깊은 뜻을 새긴 것이다.

    모든 일을 신중히 잘 살펴서 현명하게 판단하고 정성으로 대처해서 좋지 못한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이 시대에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하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다가오지 않도록 기도와 공덕을 쌓아서 삶의 충실을 기하라는 가르침이리라.

    금년 기축년 새 아침에도 지구촌의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사람들이 만든 사건이거나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결과이든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정말 조심스럽게 삼가며 살지 않는다면, 그 일들이 나라고 그냥 보아주고 우리라고 그냥 놓아줄 이유가 없는 필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적 경제위기에 몹시 움츠리는 경황에 중동에서는 같은 뿌리이면서도 종교적 신념으로 나뉘어 연일 사상자가 속출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아무 죄 없는 민간인과 어린이들의 희생이 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현실의 삶도 그리 넉넉지 못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런 엄청난 재앙을 당하고 피붙이를 잃는 한을 안아야 하는, 미어지는 비통을 얼마나 참아야 그 업을 녹일 수 있을지 그저 한숨만 나온다. 보고만 있어도 이토록 마음이 된데, 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겠는가.

    어디 남의 일뿐이겠는가? 부끄럽다 못해 처절한 심정이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하는, 그리고 물려주어야 할 우리네 한반도도 저쪽의 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 자괴감이 든다.

    한국의 정신문화를 찾아 산사를 찾거나 혹은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외국인에게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아픈 자화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만큼 피를 흘렸고 그만큼 싸웠으면 되었지, 언제까지 이념이나 명분 따위로 반목과 지루한 싸움이 지속될는지…. 얼마나 더 기다리고 참아야 진정한 화합과 공생의 마음이 열려질까.

    살아오면서 어려울 때마다 돌아보는 구절이 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 주석하시면서 한국불교 정화를 이끄셨던 동산 큰스님께서 쓰신 감(堪)·인(忍)·대(待)라는, 견뎌내고 참고 기다리라는 사바의 삶을 얘기하신 글이다. 살다보면 견뎌야 할 어려움이 얼마나 많으며, 참고 이겨내야 할 일들 또한 얼마인가? 견뎌내고 참으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바중생의 삶.

    기쁨은 나눌수록 배로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새해에는 조그만 것이라도 같이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뜨는 해이지만 삼가 조심스럽게 맞이하면서 위기와 갈등을 함께 풀어 나가는, 매일이 새로운 참신한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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