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신앙칼럼] 요리사의 칼- 이광익 교무(원불교 경남교구)

서툰 자가 칼을 잡다 손을 베듯
통제 못한 물질문명이 생존 위협

  • 기사입력 : 2009-01-23 00:00:00
  •   


  • 전통적인 요리 전수 과정을 보면, 요리에 입문한 사람에게는 바로 칼을 쥐어주지 않는다. 그것은 요리에 있어서의 칼이 갖는 위험을 줄이고, 아울러 칼이 갖는 중요하고 신성한 소명을 각인시키기 위한 고려일 것이다.

    무엇보다 초입자와 칼의 격리는 그의 안전을 위한 배려이다. 서툰 자가 칼을 잡다 다치는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초입자는 칼의 성질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익히며 내공을 쌓아가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요리사의 기본 레벨을 갖추게 되면, 조심스레 칼을 쥘 수 있도록 허락받는 것이다.

    음식은 칼로 인해 조형이 완성됨과 동시에 칼이 들어가는 칼집의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런 만큼 칼을 소중히 여기고 날을 세워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방치되거나, 칼날이 무디어지는 일은 일류 요리사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

    칼을 사용하는 오랜 수련과 경험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마음 먹은 대로 식재료를 조형해내게 된다. 더 나아가 식재료가 조미료를 흡수할 최상의 상태로 다듬게 된다. 그리하여 궁극에는 칼을 완전히 이해하고, 칼을 몸처럼 부려 쓸 수 있게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동안 미래학자들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왔다. 물질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하나 이를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물질 문명이 도리어 우리의 생존을 옥죄는 칼날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축은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논리이다. 무한경쟁이라는 것이 마지막 한 사람 남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해 보자는 것인데, 무한경쟁의 사고가 일반화되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상황이 참으로 두렵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는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해지는”(‘원불교 정전’ 개교의 동기 중에서) 20세기 초 인류 문명의 흐름을 직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 세력의 확장, 도덕의 부활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셨다.

    서툰 요리사들이 칼을 잡으면 자기 손을 벤다. 끝없이 발전하는 물질 문명에 휘둘리지 않고, 선용하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인류의 도덕성 레벨을 높게 끌어 올려야 한다. 요즘 세계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금융한파의 본질도 결국 정신과 도덕의 부재에 다름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함께 생존할 수 있는 희망은 오직 ‘선한 의지’뿐이다. 2008년에는 정신의 확장, 도덕의 부활, 공존과 나눔 등의 선한 의지들이 희망의 씨앗이 되길 간절히 염원해 본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서영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