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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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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만났던 30년 행복했습니다”

진주교도소 종교위원 권선 할머니 두 번째 자서전 펴내
시력 잃은 후에도 계속 집필 … 재소자 이야기·편지 등 담아

  • 기사입력 : 2009-0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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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선 가타리나 할머니.


    교도소행 버스를 타면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고, 재소자들의 푸른 옷자락만 봐도 가슴이 뛴다는 여인이 있다. 전 재산은 수백여 통의 수용자들이 보낸 편지와 영치금 영수증뿐이지만, 그래서 스스로를 ‘행복한 여인’이라고 부르는 권 가타리나 할머니(82·진주시·본명 권선).

    천주교 신자로 25년간 진주교도소 종교위원으로 활동했던 그가 자서전 ‘사랑의 등불, 교도소 할매(도서출판 형평刊)’를 펴냈다. 1997년에 발간한 ‘교도소 할매’에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자서전이다. 마지막이라 함은 그의 나이가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고령이어서가 아니다. 지난해 4월, 강도의 습격으로 시력을 잃게 돼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시각장애 1급’ 판정은 그의 삶의 전부였던 ‘교도소 봉사’에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1973년부터 30년간 교도소 수형자들을 위해 교화활동을 해왔던 ‘교도소 할매’가 더 이상 교도소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교도소에 가야지만 생기가 돋는’ 그의 삶이 푯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 쓰는 것’을 포기하니 서글픔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들지 않는 사랑과 그리움, 눈에 선한 보고픈 얼굴들, 가고픈 교도소,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앞 못보는 장님일지라도 더욱 더 밝아오는 마음의 눈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온 소중한 경험을 세상에 남겨야 한다”는 천주교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의 격려에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생겨’ 글을 썼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데도 매직 펜으로 글을 쓰고 고치고 다듬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산청 출신인 그는 50대 중반이던 1982년 진주 봉곡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뒤 이듬해부터 진주교도소에서 교화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교도소 종교위원으로 위촉돼 재소자들의 교화에 헌신하던 그는 성공사례 발표를 통해 교정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이같은 공로로 천주교 마산교구 선교대상과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기사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그는 총 4부로 나눠진 이 책에 그의 삶의 흔적을 모두 품었다. 1부는 그의 삶과 재소자들의 이야기, 2부에는 그가 습작했던 시와 수필, 3부에는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등에게 보내는 편지글 및 투고글, 4부에는 그에게 보내는 재소자들과 지인들의 편지를 담았다.

    안 주교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곳곳에 할머니의 삶이 녹아 스며있는 또 한 권의 복음서일 것입니다. 이 복음서는 ‘가타리나 복음서’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듯합니다”라고 했다.

    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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