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4일 (금)
전체메뉴

[신앙칼럼]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세상은 비관적인 삶이 아닌 숭고한 목적이 있는 보람된 삶”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 기사입력 : 2009-02-20 00:00:00
  •   


  • 그 어떤 사람도 인간의 노력으로 피해갈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죽음이며, 그 다음은 삶의 결과에 대한 심판이라고 성경은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말하고 있다. 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한 숙명 앞에 모든 이의 존경의 대상이었든 한 위대한 종교인이 이 세상의 삶을 마쳤다. 천주교 용어 그대로 선종(善終)이었으며, 만인의 가슴에 큰 감동의 여운과 착하고 복된 삶의 자취를 남기고 나그네 인생의 길을 마쳤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한마디로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한 평생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의 질문이다. 먼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란 질문이다. 여기에 대하여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일생 동안 이 세상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면서 “삶이란 쓰레기와 같은 것이다”라고 혹평하였다 아울러 그의 일생도 그리 순탄하지는 못하였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하나님이 맨 처음 이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 인간 아담부부를 지으신 후 “참 좋다”는 말씀과 함께 “이 아름다운 땅을 경작하고 지키라(창세기 2장15절)”고 하셨다. 분명한 인생의 아름다운 삶의 목적과 소명을 주신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은 비관적인 삶이 아니다. 누구든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는 그 시간까지 우리의 삶의 현장을 경작하고 지켜가는 숭고한 목적이 있는, 보람된 삶의 여정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이 주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마칠 것인가? ‘한스 힐터’의 저서인 ‘유언’에 이 세계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들의 마지막 말들이 어떠한가? 어떤 이들은 그 마지막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희망과 기쁨과 만족을 말하는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유언들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천박하고 의미 없는 마지막 말들로 허무와 허탈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 되어야 될까?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인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본받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삶의 목적을 이룬 그분의 인생 만족의 말이야 말로 정말 멋지고 보람된 말이 아니겠는가?

    기독교인의 죽음을 보통 소천(召天)이라 한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기독교적인 용어이지만, 뜻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믿음으로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말이다. 선종이든 소천이든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한다. 오래 살았다고 복된 삶이 아니고 짧게 살았다고 불행한 삶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969세를 산 므두셀라에 대한 삶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단지 자녀를 낳고 오래 살다 죽었다는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33세의 짧은 나이를 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은 가장 위대한 삶의 표상으로 만인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오늘 다시 한 번 내 삶의 의미를 성찰해 보면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의 두 손을 모아본다.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서영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