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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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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신별미] 통영 ‘우짜’

우짜다가 만든 ‘우짜’ 고향은 통영이래요
자장면에 우동 국물 부어 먹기 시작한 것이 전국적인 별미로

  • 기사입력 : 2009-02-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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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항남동 ‘항남 우짜’에서 만든 전통 우짜.

    자장면이 최고의 외식 메뉴였던 시절이 있었다. 자장면은 우리의 생일, 입학, 졸업을 축하해줬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야 했던 이들에겐 필수적인 이별의식이었다. 그 시절, 통영의 여객터미널에서는 서민들의 배고픔을 다독여주던 퓨전 자장요리가 대유행을 했다. 이름하여 ‘우짜’.

    ‘우짜’가 무엇인가. 백과사전의 해석을 빌리자면, ‘자장면에 우동 국물을 부어 먹는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낚시꾼들에게 해장을 하는데 이름이 높은 음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동과 짜장(자장)의 혼합요리인데, 그 앞 머리를 따서 붙인 이름이 ‘우짜’인 것이다.

    ‘우짜’가 언제부터 팔렸고, 언제부터 ‘우짜’라 불리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자장면이 고급 메뉴였던 1960년대일 것이고, 값싼 우동에 비싼 자장소스를 조금 얹어 ‘자장 맛’을 낸 한 ‘머리좋은’ 장사꾼의 아이디어가 시초였으리라. 어쨌든 ‘우짜’는 여객터미널 일꾼들의 단골 해장국이었고, 자장면을 숭배하던 초등학교 아이들에겐 인기 군것질거리였다. 통영 사람들은 이 음식을 ‘길거리 짜장’, ‘걸베이(거지) 짜장’으로 불렀다.

    ‘꿈틀대는 이마 주름에 꾸깃한 작업복/당신도 면발계층이군요/면발처럼 긴 가난을 말아 올려요/입가에 덕지덕지 짜장웃음 말고/ 우동처럼 후루룩 웃어보세요/…어쩌겠어요 삶이 진부하게 그대를 속일지라도/오늘도 우짜, 웃자,라구요’(이명윤 시인 ‘항남 우짜’)

    한 소도시의 추억 먹거리에서 전국적인 별미가 된 우짜를 찾아 통영으로 향한다. 통영에는 우짜를 파는 식당이 두 곳 있다. 원조 할머니의 손맛을 이었다는 서호시장의 ‘할매 우짜’, 20년 전통의 포장마차 출신인 항남동의 ‘항남 우짜’. 두 곳 모두 전통이 오래된 집이다.

    일행은 시를 따라 갔다. ‘화려한 풀코스 고급요리 식당이 진을 친 항남동 뒷골목’에 위치한 ‘항남 우짜’ 식당으로.

    조촐한 식당 내부, 테이블 4개, 의자 총 18개. 시각이 점심때를 지난 오후 2시건만 테이블이 풀이다. 잠시 밖에서 기다렸다가 테이블 하나가 비자 잽싸게 들어가 앉는다. 한 그릇 3500원 하는 우짜를 시킨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모두들 코를 박고 검은 국물에 담긴 오동통한 면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익숙한 듯 후루룩 면을 넘기고 국물을 마시는 이부터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초짜’티를 내는 이들도 보인다. 건너편 테이블을 향해 맛이 어떤지 물어본다. 구미에서 왔다는 이홍주(24·대구교대4)씨는 “우짜맛이 궁금해서 통영을 찾아왔는데, 느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담백하고 끝맛이 매콤해 생각보다 대만족”이라며 웃었다.

    옆에 있던 주인장이 “식당을 찾는 이들의 70%는 외지 손님”이라며 “주말, 명절이면 200~300명이 찾아들기 때문에 휴일에 쉴 수가 없다”고 엄살이다.

    주문한 우짜는 금방 나온다. 이름 그대로 맑간 우동 위에 자장소스가 얹혀져 있다. 젓가락으로 둘이 잘 섞이도록 비벼 맛을 보면 된다. 자장과 우동의 중간 맛이 있다면 아마 이 맛일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장의 고소함과 우동의 얼큰함은 놓치지 않았다. 자장 옷을 입은 우동면은 부드럽고 고소하게 입안에서 녹고, 자장소스가 풀어진 시커먼 국물은 보기와는 달리 개운하기까지 하다. 무 고명이 달큰하게 씹히는 맛을 더해 준다.

    맛을 취재할 때면 늘 그렇지만, 이번엔 특히 비법이 궁금하다.

    주인장, “국물을 느끼하지 않게 하기 위해 띠포리(밴댕이의 경상도 방언)와 야채를 많이 넣어 육수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게 끝이다. 더 이상은 가르쳐줄 수 없다며 입을 다문다. 자장과 우동의 조합, 자장면집에서 탐낼 만한 메뉴가 아닌가. 그러자 “중국집 자장은 느끼해서 안 되제. 우리는 돼지 살코기, 무 등 5가지 야채를 쓴다”고 덧붙인다.

    우짜가 유명세를 타자 인근에 우짜집이 두서너 곳 생겼지만, 금방 문을 닫았다고 한다. 보기엔 단순히 우동과 자장이 합쳐진 음식인데, 그 속내는 복잡하고 미묘하기까지 하다.

    식당은 오전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문을 연다. ‘길거리 음식’으로 시작한 우짜의 진짜 맛을 보고 싶다면, 늦은 밤 술을 한잔 걸친 채 우짜를 먹어보자. ‘해장’의 참 맛을 알 수 있다는 귀띔이다. 식당 외에도 늦은 밤, 통영 곳곳에 들어서는 포장마차에서도 우짜를 판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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