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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행위의 기준- 이광익교무(원불교 경남교구 사무국)

“결국 옳은 행위는 선한 싹을 틔워
많은 사람에 은혜로운 열매 선물”

  • 기사입력 : 2009-0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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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위의 결과를 옳게 하기 위한 도덕적 혹은 제도적인 설정들이 있는데, 이를 ‘행위 기준’ 혹은 ‘행위 규범’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행위 규범은 ‘행위의 기준을 정하는 당위 법칙’ 정도로 해석되는데, 종교적 영역에서는 그 적용이 조금 가변적이다. 예를 들어 원불교에서는 처음 입문한 수행자에게 ‘계문’이라고 하는 엄격한 행위 규범을 적용하여 생활에 실수가 없도록 인도한다. 이후 공부가 순숙되어 높은 수준의 마음의 힘을 갖춘 수행자에게는 자율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계문을 적용하다가, 결국 최고 레벨의 심법을 갖춘 수행자는 계문 적용이 없는 자유자재한 경지에서 행위하게 한다.

    행위의 결과는 반드시 많은 사람에게 은혜로워야 한다. 은혜로운 행위 결과가 나올 때, 비로소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이고, 이를 위해 행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높은 레벨의 수행자는 행위 하나 하나가 자타를 떠나 은혜롭게 하므로 굳이 규범으로 통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레벨이 낮은 수행자일수록 행위의 결과가 자타를 떠나 해로움이 많으므로 그에 맞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수행자의 마음 쓰는 수준에 따라 여섯 단계의 구분이 있는데, 3단계 이전까지는 행위에 실수가 없도록 인도하는 규범들이 적용되다가 레벨 4 이상의 수준 높은 공부인에게는 규범이 없어진다.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적용되는 원리이다. 여기에 종교적으로 더 요구되는 것은 행위의 출발이 ‘선한 의지’로 시작되는 것이다. 설사 그 시작과 과정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한 출발, 은혜로운 결과라는 기준을 절대 저버려서는 안 된다. 결국 옳은 행위는 선한 싹을 틔워, 많은 사람에게 은혜로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결과가 좋더라도 선한 의도에서 출발되지 않은 행위는 옳지 않으며, 비록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더라도 은혜가 나오지 않았다던가, 은혜를 소수가 독점한다던가 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 역시 옳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종파를 초월한 온 국민의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것은 김 추기경의 삶이 옳은 행위로 지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행위의 시작이 선한 의도를 가졌으며, 행위의 결과가 종파를 초월해 많은 국민에게 은혜로움을 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행위의 시작과 과정에 있어서 고난도 있었지만 옳은 행위의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를 초월해 훌륭한 심법을 가진 어른의 선종에 애도를 보내며, 올곧은 행위를 실천했던 그분의 삶에 존경을 보낸다. 앞으로 국경과 종교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는 훌륭한 위인들이 많이 출현하길 기대하며, 나 역시 이러한 행위 기준에 맞추어 살 수 있기를 기도하고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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