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3일 (금)
전체메뉴

옛집 돌담길 사이사이 봄이 피었습니다

☆밀양 교동 ‘밀성 손씨 집성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 골목길 걸으며

  • 기사입력 : 2009-03-05 00:00:00
  •   

  • 밀양향교 앞마당에 핀 노란 산수유꽃이 밀성 손씨 집성촌 고택과 어우러져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밀성 손씨 종가집 솟을대문





    밀성 손씨 집성촌 고택의 흙담

    5일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

    이때가 되면 보리·밀 등 농촌 들녘의 농작물도 생육을 하기 시작해 농부들은 겨우내 묵혀 두었던 농기구들을 꺼내 손질하는 등 손놀림이 바빠지는 시기다.

    농촌에서는 보리싹의 성장 상태를 보고 1년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했고, 이날 흙일을 하면 일년 내내 탈이 없다고 해 담을 쌓기도 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농촌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반가운 봄소식에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들녘 곳곳에 피어난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괜스레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요즘 같이 따스한 봄날, 누구나 한번쯤 ‘봄으로의 여행’을 떠나고픈 상념에 잠길 것이다. 이럴 때 고풍스런 아름다움과 멋이 묻어나는 ‘고택’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옛집 마당과 돌담 골목에 탐스럽게 피어난 예쁜 풀꽃과 하얀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한국관광공사는 3월에 가볼만한 여행지로 유서 깊은 ‘미르벌’의 아름다운 고택 ‘밀성 손씨 집성촌’을 소개하고 있다. 언제 가 봐도 세월의 묵은 맛이 느껴지는 전통마을에서의 특별한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봄볕의 정취가 따사로워지는 것 같다.

    예부터 밀양은 유일하게 안동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양반의 고장이라 하여 소(笑) 안동으로 불렸다. 안동이 퇴계 이황 선생 이후 비로소 양반 고장이 된 것에 반해 성리학 계보로 볼 때 퇴계의 증조부쯤 되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미르벌(밀양의 옛 지명) 여행의 시작은 미르벌 한가운데 위치한 영남루(보물 제147호)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국내 3대 누각으로 손꼽히는 영남루는 음양의 조화를 고려해 만든 태극 문양과 퇴계 선생을 비롯한 여러 문장가들이 써 놓은 현판들이 옛 시절의 풍류를 짐작케 한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영남루를 뒤로하고 찾은 밀양 교동의 ‘밀성 손씨 집성촌’은 고즈넉함과 기품이 서려 있는 전통 한옥 구조의 아름다운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골목길을 걷다 보면 99칸의 웅장한 한옥 구조를 자랑하는 밀성 손씨 종가집을 만날 수 있다. 현재는 그 후손이 한식집(열두대문)을 운영하고 있지만 옛집의 푸근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솟을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면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장독대 등 옛 사대부 양반가의 풍류와 살림살이를 짐작케 하는 옛 물건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마루 전체에 창호문을 둘러 만든 겹방 구조나 구석구석 배치된 개화기의 가구 등은 근대 한옥집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교동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지방공교육 시설인 향교를 중심으로 유림의 주택들이 밀접해 생긴 마을을 이르는 말로 전국에 많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옛 풍모를 잃은 지 오래다. 그나마 밀양 교동의 밀성 손씨 집성촌만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밀양향교를 머리에 두고 소담하게 모여 있는 밀성 손씨 집성촌의 아름다운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왠지 정감이 넘치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찾아가는 길= 동창원IC - 진영국도 25호선 - 밀양경찰서 - 밀양시청 - 밀성 손씨 집성촌(밀양향교)

    글·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 인근 가볼만한 곳

    △예림서원= 영남유림의 대부 김종직 선생이 후학들을 양성하던 예림서원과 그의 생가 후원재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자리한 예림서원(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은 명종 22년(1567년)에 당시 부사 이경우가 밀양유림의 요청으로 퇴계 이황의 자문을 받아 자씨산(慈氏山) 아래 영원사 옛터인 지금의 활성동에 서원을 짓고 덕성서원이라 하였다. 인조 13년(1635년) 상남면 예림리로 옮겼으나 숙종 6년(1680년)에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리자 부북면 후사포리로 다시 옮겨 왔다. 고종 8년(1871년)에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헐어서 치워 버림)되었으나, 고종 11년(1874년)에 향사림의 노력으로 강당과 동서재 등 부속건물을 보수했고, 1945년 광복 후에 사액(賜額) 현판을 다시 달아 오늘에 이르렀다.

    △월연정= 밀양시 용평동의 월연정(月淵亭·지방유형문화재 제243호)은 본래 월영사가 있던 곳으로 월영연이라 하였다. 한림학사 등 여러 요직을 지내다 기묘사화를 예견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월연 이태 선생이 중종 20년(1520년)에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쌍경당이라 편액(扁額)했으나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33년(1757년)에 8세손인 월암 이지복이 복원했다고 한다. 월연정은 가장 좌측인 남쪽에 있으며, 동향을 하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樑)구조로 팔작지붕을 한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이다. 북측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월연대(月淵臺)는 남동향이며, 월연정 주위에 건립된 제헌(齊軒), 월연대 등 모두 풍치가 수려한 곳에 무리를 이루어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지형에 맞추어 모두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만어사= 삼랑진읍 만어산(674m) 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만어사’는 계곡을 따라 수많은 바위들이 일제히 머리를 산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 바위들은 오랜 옛날(가락국 시대) 이곳에 살던 나찰녀(사람을 잡아먹는 鬼女의 이름) 다섯과 독룡이 사귀면서 횡포를 일삼다가 부처님의 설법으로 돌로 변했다는 전설과 용왕의 아들을 쫓아왔던 만 마리의 물고기가 부처로 변해버린 용왕의 아들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 쪽으로 머리를 우러르는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 바위의 2/3가량이 두드리면 종소리와 쇳소리, 옥소리 등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