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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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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우해이어보’와 진해 - 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09-03-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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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나의 애독서는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라는 옛 책이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김려(1766~1821)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 즉 ‘물고기총서’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쓴 ‘자산어보’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우해이어보’가 ‘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서 1803년에 만들어졌다.

    우해(牛海)는 우산(牛山)과 함께 ‘진해’의 옛 이름이다.

    김려는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진해로 유배를 와서 진해바다에서 서식하는 모두 72종의 어패류들의 이름과 생김새, 습성, 포획 방법 등을 이 책에 세세하게 기록했다.

    ‘우해이어보’가 물고기만 기록한 ‘자산어보’와 다른 점은 김려가 이 책에 ‘우산잡곡’이라는 한시 39수를 함께 수록한 것이다. ‘우산잡곡’은 진해바다를 소재로 해서 활기찬 진해의 옛 모습을 시편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려는 물고기에 대한 기록만 남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진해, 우해에 대한 풍물시를 같이 남겨 200여 년 전의 진해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해이어보’의 역자인 경성대 박준원 교수도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우해이어보’는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서적인 ‘어보’이지만, 단순히 물고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로작업의 현장과 수산물의 유통과정, 남도 아낙들의 모습 등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서 200년 전의 진해의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진해의 옛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이런 즐거움이 내가 이 책을 애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려도 ‘우해이어보’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해는 진해의 다른 이름이다. 내가 진해에 온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섬들과 가까이 살았고 대문이 바다에 닿아 있어서, 뱃사람들이나 어부들과 서로 허물없이 지내면서 물고기와 조개들과도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김려의 진해바다에 대한 관심이 ‘우해이어보’를 쓰게 했는데 책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어보는 이어(異魚), ‘특별한 고기’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김려는 당시 기준으로 평범한 물고기에 대한 기록이 아닌 ‘기이하고 괴상하며 놀라운 물고기들’에 대해서 적어두었다.

    ‘우해이어보’를 보면 문절망둑, 감성돔, 볼락, 학꽁치, 쥐치, 자주복 등 지금은 널리 알려진 바닷물고기들도 있고, 침자어, 도알, 한사어, 노로어, 계도어 등 지금도 알 수 없는 바닷물고기들도 많다.

    현대 어류도감에도 나오지 않는 물고기들이 이 책 속에서 싱싱하게 살아 있다. 특히 ‘우해이어보’는 19세기 우리말의 비밀을 캘 수 있는 책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김려는 ‘볼락’을 ‘보라어’(甫羅魚)라 기록하고, ‘우리나라의 방언에 엷은 자주색을 보라라고 하는데 보라어의 이름은 반드시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경남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인 ‘볼락’의 어원이 ‘보라’에서 왔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에도 이미 죽방렴 어업이 유행하고 있었고, 감성돔으로 식해 만드는 방법, 대게의 껍질로 5~6명이 들어가는 주점의 지붕을 만들었고, 거제 고성 함안 등 인근 지역과의 어획물의 활발한 거래 등의 기록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나는 차제에 경남도와 진해시가 ‘우해이어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연구하고 조사하여 기념전시관을 세우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으면 한다.

    ‘우해이어보’가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라는 역사적이고 해양문화적인 가치를 자랑스러운 자원으로 삼았으면 한다.

    진해가 최초의 어보를 쓴 바다라는 것, 그 속에는 다양한 관광 콘텐츠가 숨 쉬고 있다는 것,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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