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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1) 잊혀진 경제사

‘튤립 투기’서 비롯된 경제공황 그러나 역사는…

  • 기사입력 : 2009-03-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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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세기 초반. 한 해양 강국이 있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장악했으며, 당대 최고의 선박이 만들어지고, 세계 금융의 허브였던 곳, 이 나라는 바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큰 부를 쌓았고, 네덜란드 사회는 풍족했다.

    튤립이라는 꽃은 네덜란드인들이 유독 사랑한 꽃이었다. 색깔이 다양하고, 또렷할 뿐만 아니라 키우기도 쉽지 않았다. 키우기 쉽지 않으니 오히려 더 신경을 썼다. 상류층에서 시작된 튤립 재배는 서서히 네덜란드 전 국민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기호였다. 그러나 이것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튤립에 가격이 매겨지고, 튤립을 위한 시장이 만들어졌다. 이 시장에서 튤립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는 일이 생겨나자 드디어 사람들은 다른 일들을 뒤로하고 튤립 투기에 나섰다. 모두 일확천금을 꿈꿨다.

    1634년부터 시작된 튤립 투기는 1635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튤립 한 포기에 황소 수십 마리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하였다. 주식시장 안에서 튤립시장이 만들어지고, 다른 곳에서도 튤립시장이 만들어졌다. 큰손들의 장난으로 튤립 가격은 급등락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튤립 투기에 미친 네덜란드인들은 하층민까지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 거품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짐작한 이들이 있었다. 소위 큰손들은 적은 이윤을 남기고 튤립을 내다 팔고, 시장에서 자취를 끊기 시작했다. 큰손들의 실종으로 비로소 정신이 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튤립을 팔려고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튤립을 사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수많은 귀족과 더 많은 국민들이 채무자로 전락했다. 당연히 튤립을 살 돈은 빚을 내서 장만한 것이다. 반면 큰손들은 산업이 초토화된 네덜란드를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 자본이 다 빠진 네덜란드는 더 이상 세계 강국이 아니었다. 이것을 바로 ‘튤립공황’이라고 부른다.

    1920년대 중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돈을 무한대로 풀기 시작했다. 저금리의 시혜 속에서 속속 은행들이 세워졌고, 은행들은 한참 오르고 있는 주식시장에 돈을 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식이 폭등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주식으로 순식간에 수백, 수천 배를 버는 일이 가능해졌다. 미국인들은 벌게진 눈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에는 유행하던 금융상품이 있었다. ‘마진 론’이라는 것으로 주식의 10% 가격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돈을 빌리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주식을 보유할 수 있었다. 적은 비용으로도 주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국인들은 온 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식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 ‘마진 론’에는 함정이 숨어 있었다. 바로 90%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 갚아라’고 콜을 당기면, 48시간 내에 돈을 갚아야 했다. 일부 미국인들은 이를 걱정했지만, 주식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기에 곧 근심을 놓고 주식 투기에 뛰어들었다.

    운명의 1929년 10월, 큰손들은 조용히 주식시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충분한 차익을 실현한 큰손들은 최후의 카드를 사용했다. 바로 ‘돈 갚아라’라고 일제히 콜을 당긴 것이다. 엄청난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주식을 팔기 위해 몰려들었고, 주식은 대폭락을 거듭했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바로 세계 경제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이 대공황으로 무려 1만60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고, 이 과정에서 큰손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을 뿐만 아니라, 경쟁 은행의 붕괴로 금융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굳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미국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 하나의 시나리오를 볼 수 있다. 어떤 상품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고, 이는 곧 투기로 이어지고, 너나 할 것 없이 투기판에 뛰어들어 거대한 거품이 일어난다. 이쯤 되면 큰손들이 발을 빼고, 의도적으로(혹은 자연스럽게) 공황을 일으킨다.

    ‘튤립공황’을 보고 네덜란드를 비웃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부동산 열풍이 휘몰아쳤고, 이는 부동산 폭등으로 이어졌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빌려서라도 아파트를 구입하고, 가만히 앉아서 폭등하길 기다린다. 발 빠른 큰손들은 팀을 꾸려 집값을 폭등시키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챙긴다. 허름한 20평짜리 아파트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기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은행들은 아파트 값이 오를 거라고 믿고 아파트 시세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줬다. 이렇게 거대한 거품이 낀 상태에서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다. 은행들은 200조원을 초과해 주택대출을 해주었고, 이로 인해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마지막 남은 시나리오는 부동산 대폭락뿐이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언론이 띄워주자 금방 주식 열풍이 일어났다. 2000을 넘어, 3000, 5000까지 찍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타이밍에 맞춰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2중, 3중, 4중으로 얽혀진 파생상품의 고리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백척간두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과거로부터의 교훈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정치사에 치중하여, 사회·경제적 역사는 거의 배우지 않는다. 필자는 거의 모든 임금들의 재위 순서와 재위 연도를 외울 정도지만, 당시의 경제 구조가 어떠했으며, 어떤 경제생활을 했는지는 그저 몇 줄 막연하게 알 뿐이다.

    우리 교과서에서는 네덜란드의 튤립공황에 대한 이야기는 없을 뿐더러, 미국의 경제공황도 막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경제적’인 것이라 심도 있는 기술을 포기하고, 일어난 결과만 다루고 있다.

    역사는 어제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오늘을 살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거울을 통해 비쳐진 우리의 현재 모습을 인식하고, 과거의 거울을 통해 우리의 내일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거울은 반 이상은 깨어지고 파편만이 남아 있다. 이래서는 우리의 얼굴조차 제대로 비춰 볼 수 없다. 수차례 경제위기를 겪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놓인 오늘을 살면서도 역사책을 보면 반면교사로 삼을 내용이 없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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