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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삼월의 주인

  • 기사입력 : 2009-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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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꽃들이 아직 찬바람 속에 움츠리고 있을 때 서둘러 봉오리를 열고 연분홍 잎새를 피워 향기가 코를 찌르게 하는 매화는 단연 삼월의 주인이라고 옛 사람들은 말해 왔다. 더러는 뼈를 시리게 하는 냉한의 눈을 잎새에 보듬고 피기도 하니 그 꺾이지 않는 지조로도 주인 대접을 받을 법하다.

    “담 아래 뿌리 내린 /고달픈 매화나무여 / 가시 잡초에 얽힌 / 힘겨움 아는 이 적음을 /그리 서럽다 마시게./ 향기 짙은 꽃가지엔 / 달빛 밝게 내릴지니”/ (結根墻角苦生涯/枳棘爲隣草作家/莫恨年來少相識/暗香枝上月光多) 송강 정철(1536~1593)의 매화에 관한 시이다. 억센 환경 모진 조건을 이겨내고 봄을 데려오는 선봉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매화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사람을 대하듯 위로하여 쓴 시이다.

    며칠 전 시골의 어느 외진 마을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곳의 낮은 동산 언덕엔 소박하게 지어진 낡은 정자 하나가 있었다. 백년을 두 번이나 넘겼을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정자였다.

    병풍 같은 앞산 너머로 구름 한 아름 흘러가고. 주인 떠나서 두 백년 된 마당 가득 분홍 매화가 피고. 떨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깡깡한 선비의 바튼 기침 소리가 환청으로 새어나오는 정자였다. 이미 주인 떠나서 빈 정자 되고 백년을 몇 번이나 지났건만 마당 끝의 매화는 아직도 그날 같이 방년의 솜씨로 피어 한 번 떠나서 아니 오는 주인을 밤을 몇 천 번 도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단장을 한껏 하고서….

    그 여린 분홍빛 입새를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음을 겪어야 했고. 그 아린 향기를 두고 어찌 등 돌려 떠나나 하는 망설임에 한없이 서성여야 했다. 그렇게 “네 가슴에 내 마음을 묻어두고 가마. 내 가슴에 너를 보듬고 가마. 내년 삼월이 오면 내가 네 주인 되어 달빛을 안고 다시 오마”하는 한 구절 스스로를 위로하는 글을 뿌리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내용이 천편일률로 삼각관계를 주제로 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치정의 내용이기 때문이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간격을 너무 심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계층 간의 간격과 인간 간의 갈등이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인 것처럼 방송이 자꾸 흥미 본위로 다루어 국민의식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가 있다고 신문에 소개되기에 행여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모습을 다듬어 내는 내용인가 해서 잠시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흥미 본위의 고소득층 젊은이들과 저소득층 젊은이들 간의 간격 갈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방송이나 신문의 뉴스 이외의 내용은 계층 간 갈등을 해소케 하고 사람과 사람 간 간격을 좁히게 하는 내용으로 꾸며져야 한다. 사회를 아름답게 하고 나라를 건강하게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오히려 그 소명을 잊고 상업주의로 운영되는 신문 방송은 사회의 암적 존재다.

    사월에 막 접어든 지금, 우리가 이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매화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있음을 한탄하여 몇 줄 소회를 적어 보았거니와 부처님께선 다음과 같이 이르셨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향기가 없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사람이 아무리 잘 생겨도 제 가치를 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어여쁜 꽃과 향기를 빚어 메마른 초봄을 곱게 적셨기에 삼월의 주인이라고까지 칭송한다. 사람이 매화보다 아름다울 수 있음을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다. 삼월의 주인이 우리가 되도록 모두가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 다듬으시기를 기도한다.

    도성 스님(진해 대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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