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9월 20일 (목)
전체메뉴

[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2) 쇄국이냐, 개방이냐?

흥선대원군이 살아온다면 나라 문을 열까

  • 기사입력 : 2009-04-08 00:00:00
  •   
  • 개방과 쇄국. 오랫동안 회자된 논제이다. 대체로 우리는 ‘쇄국’ 때문에 조선은 근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사람들에게 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흥선대원군이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조선의 문을 꽁꽁 닫은 사람이었다. 이 때문인지 대중들은 흔히 흥선대원군을 떠올릴 때 꽁한 옹고집을 가진 어르신 정도로 인식한다. 과연 그럴까?

    흥선대원군의 부인은 의외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우리에게 개화파의 거두로 알려진 박규수를 평안감사와 좌의정으로 적극 등용하였다. 게다가 흥선대원군은 서양의 증기선을 모방한 증기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서 실패했다. 서양의 총알을 막아내려 방탄복도 만들었으나 너무 무거워 실용화엔 실패했다. 또 프랑스와 협력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하였으나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 그가 개인적인 신념만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나라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고는 할 수 없다. 나름대로 개방을 모색하기도 하였고, 상황에 발맞춰 대응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정보가 부족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일단 조선 내부를 안정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 쇄국정책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흥선대원군의 고민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열강들은 개항한 나라를 경제적 식민지로 만들고, 정치적인 지배력까지 행사했다. 흥선대원군은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개항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개항론자들의 주장은 달랐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서구 열강과 무력으로 맞서다 개항했으며, 이로 인해 서구 열강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선이 주도권을 쥐고 개항을 전략적으로 추진했다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수한 문물을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유림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보수 유림들은 경제적으로 판단해 볼 때, 조선이 얻을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서양과 교류를 하면 조선에 들어오는 것은 서양의 사치품이나 신기한 물건들인데, 이를 들여오면 그 대가로 지불할 것이 쌀밖에는 없다. 조선의 쌀이 빠져나간다면 조선 백성들의 삶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림들의 주장처럼 개항 이후 쌀값은 폭등했고, 백성들은 민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래서 방곡령을 발동하여 쌀과 곡식의 반출을 막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사례로 볼 때, 흥선대원군이나 보수적인 유림들도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개항 불가만을 외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현실적인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개항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생각에만 빠져 무조건 개항하거나 무조건 쇄국하자고 주장한 사람들은 당대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역사의 이면이나 진정한 내용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대중매체나 완전하지 못한 교과서에 의존하여 역사를 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논리도 없이, 현실 인식도 없이 결과론만 들고 과거를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기, 다른 나라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본은 개항을 선택했다. 1850~60년대 개항을 통해 천황 중심의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개항으로 인한 식량 부족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조선을 강제로 개항하여 조선의 쌀을 토대로 간신히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반도, 나아가 만주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반면 미국은 일정 부분 문을 닫아버렸다. 당시 영국의 철강은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미국도 영국 철강을 수입함으로써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다 미국인들은 여기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은 영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급격하게 올리기 시작했고, 특히 철강 제품에는 50% 이상의 ‘미친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은 문을 닫고 기술력과 자본을 투자하여 철강 산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의 공업이 충분한 기술력을 갖췄을 때, 전 세계에 철강제품과 공산품을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문을 닫아거는 나라에는 힘으로 문을 열고 시장을 잠식해 갔다.

    근대화 시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산업들은 철저히 문을 잠그고, 정부의 엄청난 지원으로 빠르게 기술력과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이 되었다.

    이렇듯 문을 열고 닫는 것은 그 시대적 상황과 자국의 현실과 적절히 발맞춰 이뤄져야 한다. 개방해서 성공했으니 우리도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극히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미 FTA와 세계 금융 공황으로 인해 다시 ‘개방이냐, 보호냐’라는 19세기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시대적 상황과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을 최대한 반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생각이나 특정한 사례에 매몰되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다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쳐올 것이다.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치밀한 꼼꼼함이, 한쪽으로의 일방적인 정책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다면화된 정책이 필요할 때이다.

    임종금 -‘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