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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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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간이역 앞에서-최미선(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09-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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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빈 역사(驛舍)의 유리창은 분주했던 지난 시간의 흐릿한 기억처럼 먼지만 뽀얗다.

    여행객들의 ‘손바닥을 데웠을 톱밥화로’가 있던 대합실의 구석자리에는 마른 기침 같은 낙엽이 뒹굴고, 강직한 철길만이 기차가 꼭 올 것이라는 약속의 징표처럼 굳세게 뻗어 있을 뿐이었다.

    2번 국도 옛길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간이역 ‘갈촌역’이 얼마 전 무인역으로 바뀌었다. 역사(驛舍) 출입문에는 다음과 같은 알림문이 붙어 있다.

    ‘하루 이용객이 6명이 안 되는 작은 역이라서 무인역으로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역을 지키던 사람들은 떠나고, 빈 역사(驛舍)를 지키고 있는 것은 문지기 같은 은행나무, 측백나무. 사철 꽃도 없이 늘 짙푸르기만 한 개동백나무, 향나무, 철을 따라 피어나서 홀로 흔들리고 있는 몇 포기의 들꽃뿐이었다.

    승강장 나무의자 등받이에 켜켜이 쌓여 있는 석탄가루 같은 검은 먼지는 빈 역사의 적막을 더할 뿐이었다. 흔한 참새 떼의 재잘거림마저도 없었다.

    갈촌역의 하루 이용자 수가 6명뿐이었다는 것은 애초 잘못된 계산법이다. 심정적 이용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계산이었다.

    길을 향해 열려 있는 갈촌 역사의 투명 출입문은 언제나 여행을 유혹하는 문이었고, 간이역에서 출발하는 소박, 조촐한 여행은 계획만으로도 얼마나 설레는가?

    어디 그뿐인가. 간이역의 불빛은 마치 칠흑의 밤 항해를 도와주는 등대처럼 밤 귀갓길을 밝혀주는 안전 지킴이 같기도 했다.

    그러니 단지 갈촌역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지 않았을 뿐, 늘 심정적으로는 갈촌역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심정적 이용자가 비단 한둘에 그쳤을까? 무인역으로 바뀌자,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는 역사(驛舍)는 폐광의 동굴 같았다. 꽃등을 매단 것처럼 불빛을 끌고 밤 열차가 지났다는 이야기는 한갓 거짓말같이 들릴 뿐이다.

    하루의 일과를 위해 오고간 그 숱한 사람들의 지난(至難)한 시간의 발자국들도 폐광과 같은 검은 어둠 속에 아주 함몰되어 버리고 말 것 같다.

    누군가에는 푸른 꿈의 출발 선상이기도 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눈물을 뿌리는 회한의 선상이기도 했을 터이지만, 그 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마저 암흑 같은 어둠에 묻혀버리지는 않을까?

    언제였었나. 갈촌역을 이용해 본 기억이 꼭 한 번 있다. 열차표를 예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갈촌역에 가까이 왔을 즈음 문득 예매 생각이 났다. 이미 진주 시내를 한참 벗어나 있었고, 진주역으로 다시 갈 일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 ‘갈촌역’이 있음을 생각해 냈다. 늦은 밤이었음에도 갈촌역은 불을 밝히고 기다리고 있었고, 당연히 승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갈촌역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에 고마웠고, 늦은 밤까지 불을 밝혀 기다려준 것에 고마웠다.

    간이역 하나가 이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 긴긴 시간 동안 설렘과 회한의 순간들, 지난(至難)하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지켜보았던 등불은 이제 꺼졌다.

    시골마을이 비어 간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마을마다 불빛이 꺼져가는 집이 점점 더 늘고 있다.

    한때나마 마을 사람들에게는 동맥이나 다름없었을 곳의 불빛이 하나씩 꺼지는 것은 마을 공동화를 더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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